조선상고사, 224-225,비봉출판사(제 말대로 조선시대에 적어 둔 자료)

2009. 1. 5. 17:40한민족고대사

조선상고사, 224-225,비봉출판사

 

 

후한서 동이열전에

"고구려와 선비가 우북평,어양,상곡,태원 등지를 침략하다가 채동(또는 제융)

이 은신(恩信)으로써 부르므로 다시 항복하였다." 고 하였으나,

해마다 2억7천만 전(錢)의 돈을 준 것으로 채동전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하 생략)

 

 

삼국사기입니다.

 

 

<삼국사기>

 

二年春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而遼東太守祭以恩信待之乃復和親

 

 

[모본왕 2년 봄에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쳤으나 요동태수 제융이 은혜와 신뢰로

 

 

 

대우하였으므로 다시 화친하였다]

 

 

 

 

출처:

 

 

http://blog.naver.com/casahoo/20001708965

 

 

 

 

 

 

 

 

 

어떻습니까?

 

 

삼국사기와 중국사서(후한서), 조선상고사가 한결같이

 

 

고구려와 한나라의 전쟁터를 요동과 요서지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도 고구려와의 전쟁이 북경 근처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들이 너거 하고 우리하고 전쟁 붙은 곳이 한반도가 아니라 북경 근처라고 하는데도.......

 

 

 

돈에 관련된 내용이기에 적어둡니다.

 

 

 

 

 

고조선과 한나라 간에 누가 주고 누가 받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해마다 "2억 7천만 전" 이란 돈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느낌 만으로도 엄청난 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자조선 이후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남의 돈을 훔친 자는 50만전을 내어야 한다했습니다.

 

제가 현대 돈으로 5천만원 정도라고 어림잡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이미 조선 시대에 이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수산 이종휘라는 분이십니다.(1731-1797)

동사(東史) 입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knu=05040046&menu=cview&encrt=0Nv92a150wbTmATYMDA0NiZzZWNzdWJudW09NjM=&query=%B1%E2%C0%DA%C1%B6%BC%B1%2050%B8%B8%C0%FC#middle_tab

 

 

 

http://100.naver.com/100.nhn?docid=828840

 

 

이 분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50만전은 지금의 돈 5천 꾸러미에 해당하고, 전은 조선통보이다. 그 옛날 돈이 가끔 지금 세상에도 전하고 있다.

 

 

 즉 근대 조선의 "조선통보" 쯤에 해당하는 화폐를 기자조선 시대에 사용했다는 것이고, 그 돈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렇다면,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명도전" 일 것입니다.

 

설마 근대 조선의 화폐 "조선통보" 와 고조선의 화폐를 구분 못해서 "조선통보"라고 적어 두신 것은

아니겠지요.

 

 

기자조선 시대에 화폐 유통 방식이 있었다는 것도

최근 은갑골문을 통해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이제는 다 아시지요.

 

상인(商人)이란 상나라 즉 은나라 사람들이 장사를 많이 하였기에

이런 말이 생긴 겁니다.

 

 

 

근대조선 시대에 이미

기자국 화폐를 언급 한 분이 두 분이 계시고, 한 분은 직접 목격하셨다합니다.

 

좀 더 상세히 설명해두었다면 더 좋았을 터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