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투를 찾아보겠습니다.

2022. 1. 13. 07:46언어와 유전자학

당시 중국에는 경제와 문화가 발달한 전국칠웅()이 있었는데 그중 세 나라가 흉노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그 후에 조나라 장군 이목()이 있는 동안은 흉노가 감히 조나라 국경을 침범하지 못했다. 뒤에 진()나라가 6국을 멸망시키고 시황제()는 몽염()에게 10만 명의 군사를 주어 북쪽의 흉노를 공격하여 하투() 이남 땅을 모두 진나라의 영토로 만들었다.

또 황하를 이용해 요새를 만드는 한편, 황하의 강변을 따라 44곳에 현성()을 축조하고, 죄수들로 이루어진 병사를 옮겨다가 이를 지키게 했다. 그리고 직도()를 만들어 구원()에서 운양()에까지 개통시켰다. 또한 험준한 산맥, 구릉, 계곡을 따라 참호로 삼아 보충해야 할 곳은 손을 더 보아서 임조()를 기점으로 요동에 이르기까지 만여 리에 달하는 장성을 쌓았다. 또 황하를 건너가 양산()에 거점을 마련하고 북가() 사이를 점령했다.

당시는 동호의 세력이 강하고 월지()도 번창했다. 그 때에 흉노의 선우()는 두만()이었다. 두만은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여 북쪽으로 옮겨 살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에 몽염이 죽고 과거 육국의 귀족들은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중국은 온통 혼란상태가 되고 진나라가 변경을 지키기 위해서 보냈던 수비병들은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흉노는 마음 놓고 다시 점차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와 옛날의 요새를 경계로 삼아 중국과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110. 흉노열전 [卷一百十. 匈奴列傳]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1. 하투=현재 하투가 아닙니다.

하투에 대한 사전 자료입니다.

북쪽으로 흐르는 황허강[]이 인산[]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만곡하는 부분과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고원지대로 사막 ·초원 ·염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르도스란 15세기 중엽 이후 이곳이 내몽골 여러 부()의 하나인 오르도스부의 목축지를 이룬 데서 연유한 것으로서 현재 어얼둬쓰[]라고 표기하나, 본래 중국에서는 BC 3세기 이래 하남(), 후에는 하투() ·투중() 등으로 불렀으며, 몽골 유목민과의 교섭 또는 공방()의 요지로 삼아 왔다. 그러나 남북간 교섭 내지 공방 관계는 오르도스 내부의 사막화가 심하기 때문에 지금의 바오란[]철도 연변부 또는 장성선() 북쪽에서 전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어얼둬쓰 [Ordos, 鄂爾多斯(악이다사)] (두산백과)

 

몽골의 부족명인 동시에 그 부족이 점거하고 있는 지역의 명칭. 현재 황허()의 만곡부()와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전역을 지칭한다. 중국 측에서는 예로부터 이 지역을 ‘하투()’라고 불렀다. ‘하()’는 황하, ‘투()’는 굽은 곡이라는 뜻이다. 일명 ‘쑤이위안()’이라고 한다. 유목의 적지()가 많아 옛날부터 유목민들의 쟁탈 대상지였으며, 그들의 생존거점이기도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르도스 [Ordos, 綏遠]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정수일)

 

위치를 찾아 봅니다.

 

http://contents.nahf.or.kr/id/jo.k_0001_0110_0040#self

 

동북아역사넷

전국시대를 거쳐 진(秦)의 시황제 때 몽염이 흉노를 쳐서 하남 땅을 모두 차지함

contents.nahf.or.kr

 2. 北假 : 지명으로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河套(오르도스) 북쪽, 陽山 남쪽의 來山帶河 지역이다.

 

동북아 역사넷,...해석은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다음 구절이 중요한데, 흉노는 북으로 밀어 하투 이북으로 몰아 내었지만, 동호는 강성하여 몰아내지 못했다는 어감이 들어 있습니다. 진나라가 쇠퇴하자 흉노는 다시 원래 자리 황하유역으로 내려왔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역시 만리장성은 진나라때 축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만약 진나라의 국경이 만리 장성이라면, 만리장성을 지나서 몽염이 북진한 양산(陽山)과 상군(上君: 현재의 유림)이 지금의 요서와 요하에 있어야 하지만 없습니다.

 수구리님의 의견대로 동호(고조선의 후국: 부여일 가능성이 많음)는 진나라 때까지도 하북 북경과 제나라 상당 부분을 방어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한나라에 밀려난 산동의 동호(이전엔 동이: 래이, 거이) 세력이 한반도로 건너와 백제를 건국했다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백제 입장에 보면 산동은 우리의 고토이니 결국 대륙 백제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다시 정리하자면, 진통일 후 몽염이 10년 간 북진한 곳이 현재 만리장성 안이고 황하강 상류 주변이라면 기존 역사 해석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 황하강 변천사 https://blog.naver.com/tnrnfle/222253743000

 

진나라 장성도

https://blog.naver.com/tnrnfle/222314578588

 

진秦장성 지도, 연燕 장성 관련 문헌

원본 : 가생이닷컴>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 기록 관점으로 보는 조양(造陽) ' 유중(榆...

blog.naver.com

'진나라 장성도'도 버젓이 남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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