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곡(上谷) 고찰

2022. 1. 13. 13:19언어와 유전자학

상곡(上谷)고찰

 

그러면 이제 단선적인 1회적 시각에서 벗어나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역사 해석을 해 보겠습니다.

먼저 사마천이나 우리나 승전을 기록하고 후퇴는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치욕스러운 것은 은근 다른 시기로 돌렸을 수도 있습니다.

1. 연나라 진개의 연대가 불명확해서 해석에 어려운 점이 있으나, 사기에 따르면, 대략 BC 250 년 전후 인데 환단고기는 특별한 내용 없고 사마천의 사기에 동호 1천리, 조선 2천리 기록이 있습니다.

2. 비슷한 내용이 환단고기(안경전 역주, 임승국 번역/주해)에 있는지 찾아 보았습니다. 45세 단군 여루 시절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이야기를 연결해 보겠습니다.

1. BC 365년 전, 연나라 사람 진개가 아닌 '배도'라는 장수가 요서를 함락시키고 운장에 육박해 왔다.

이에 번조선이 대장군 우문언에게 막게하고, 진조선과 막조선도 도와서 연제 군사를 오도하에서 쳐부수고는 요서의 여러 성을 남김없이 되찾았다.

 

오도하가 여러 군데인데, 현재로는 북경 위쪽이 제일 유력하고, 좀 심하게 산동 아래쪽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 BC 350년전 북막(北漠)의 추장 액니거길이 조정에 찾아와 연나라를 치자했다. 번조선의 신불사로 하여금 연나라 상곡(上谷)을 공격하고 성읍을 쌓게 했다.

여기서 1번과 2번 사이에 없지만, BC 365~BC350 년전, 진개의 동호 천리 침략을 넣어보면, 환단고기의 '북막'을 동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胡는 중국에서 부르는 것이고 우리는 스스로와 겨레 국가를 오랑캐라 부르면 안되는 것입니다. 다음 연나라 상곡(上谷)이 중요한데, 보통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25962ab1adcd4a1f9397870c8ddb4a3b

 

네이버 국어사전

3개의 한국어 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 상세검색, 맞춤법, 보조사전

ko.dict.naver.com

그런데 블로거 중 '상곡'을 달리 'earthlin9 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개(秦開) 연장성(燕長城)의 기점 조양(造陽)은 하북성 보정시 역현(易縣)의 자형관(紫荊關) 일대에 있었다

 

기존에는 장가구 근처라고 보통 생각했으나

여러 사료를 들어 '보정시' 일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earthlin9 님' 주장

<<위 사료들의 내용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전국(戰國)시기의 상곡군(上谷郡)은 지금의 하북성 보정(保定)시 일대이고 조양(造陽)은 그 서북 변경 즉, 거용관(居庸關)에서 서남 방향으로 자형관(紫荊關)을 거쳐 보정시 서북부의 도마관(倒馬關)까지 내장성(內長城)을 따라 이어지는 경로에 근접한 어딘가에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https://blog.naver.com/tnrnfle/222309623810

수구리님은 상곡을 양천시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3. BC 343년전, 상곡 싸움 이후 연나라가 해마다 침범했다. 사신을 보내 화해를 청했고, 조양(造陽)의 서쪽으로 경계를 삼았다.

계속 상곡에서 전투가 있었고, 'earthlin9 님' 은 조양을 보정시 근처라 보고 있으니 의미가 있는 단어라고 봅니다.

4. BC 341 년 번조선 왕 해인이 연나라의 자객에게 당하다.

BC 304 년 도성에 불이나 단제께서 이궁으로 피난을 가셨다.

5. 47 세 단군 고열가

BC 246 년: 북막의 추장 아리당부가 군사를 내어 연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했으나 단제께서 허락하지 안으시니 이 때부터 공물을 바치지 않았다.

 

45세 단군 여루 시절에는 북막과 같이 연나라를 쳤으나, 47 세 단군때는 치지 못하였다.

사마찬 사기의 진개 생존 연대와 맞추자면, BC 246 년 일이 가장 맞춰 보기 쉽고,

그 전투 양상을 비교하자면, BC 350 년 기록이 유사하다.

결국 상곡과 조양을 현 '보정시'로 본다면,

역시 세형 동검이 나온 위치와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