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10. 20:08ㆍ언어와 유전자학
그러므로 전국시대 요서지역의 십이대영자문화를 계승하는 동대장자유형
은 동호와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정치체의 문화이며, 예맥(또는 맥)이나 고
조선과 관련하여 논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전국시대 연국(燕國) 관련 사
적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선진문헌 등에 기록되지 않은 집단이나 정치체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기원전 4세기대에 한정하면, 난하 이동지역
에서 연과 가장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며 성장했던 정치체가 선진문헌에 기록됐
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요서지역의 물질문화 담당자를 동호로 본 것은 과거 중국 학계와
일본 학계의 연구 전통에서 비롯된 바 크다.26 과거에는 십이대영자문화의 독자
적인 면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대다수의 연구자가 하가점상층문화와
십이대영자문화를 구분하여 인식하고 있다. 국내학계 역시 하가점상층문화는...
130쪽입니다.
그림4, 전쟁이전 기원전 350년전 즈음 상황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최근 발견된 세형동검 하북성 3점, 산동점 5점에 대한 견해가 반영되지 않은
보통의 학설입니다.
환단고기(안경전 역주, 임승국 번역 주해 모두 참조)
환단고기에 따르면, BC 365년 연제를 제압했고, BC350년에 연나라 상곡을 공격했다고 했으니, 15년간 연나라와 일진일퇴를 하다가 BC 349 년에 연나라에게 상곡을 빼았겼던 것이니 상곡은 북경 근처라 보면 위 이후석 교수님 자료와 틀린 것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빼앗은 북경과 하북 표식은 없고, 연나라의 강역 표시만이 되어 있다는 것이 환단고기와의 차이점입니다.
137쪽
그러므로
인명이나 지명 그 자체는 인정되겠지만 조선후(왕)의 계보(王系), 칭왕 명분(尊
周), 전쟁 거리(서방 2천여 리) 등은 그대로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 전쟁 거리를 적용해야 북경을 지나 하북 망도까지 세형동검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데,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갑니다.
그럴 수 있는지 네이버 지도에서 재어 보겠습니다.
심양에서 북경까지 =대략 630km
10리는 4km
2천리 는 800km 이니 더 내려가야 합니다.
위 자료: 중국측 역사서 인정, 유물 발굴 자료 인정, 이후석 교수님 자료 참조
연이 치열하게 고조선과 전투 후 북경 근처 상곡을 회복한 후, 당시 척도가 좀 아닐 수도 있고 워낙 거시기 한 나라이니 과장법을 좀 했으리라 보고 170km 나 깎아 주어도 진개 침략 전 고조선과 연의 국경은 하북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환단고기에서 말한 북경 근처의 상곡 전투와 거의 일치하게 됩니다.
조선과 연의 전쟁에 관한 모든 역사적 사실은 가져오고 중요한 거리만 아니다하면 이치에 맞지 않지요?
그리고 2천여리라 했으니, '남을 여(餘)' 는 2천리를 넘겼다는 것입니다. 만약 2천여리를 정확히 적용한다면, 석가장까지 내려 가야하는 것입니다.
세형동검이 발견된 하북성 망도(왕두현)이 어디 있는지 다시 보겠습니다.
정확히 2천여리에 해당하는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연히 심양에서 보정(왕두)까지 2천여리 되고, 그 자리에 한국형동검 이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https://blog.daum.net/daesabu/18325254
원문
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jo&levelId=jo_004r_0010_0070_0030&types=r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번역: 연은 장수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 지방을 침공하고 2천여리의 땅을 빼앗아 滿番汗에 이르는 지역을 경계로 삼았다
다음을 계속 보겠습니다. ------------------------------------------------------------
그리고 대략 BC 210~200 경에 연제조 유민들을 기준 번한 단군이 서부지역에 거주하게 했다고
환단고기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공통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즉 북경에서 심양까지의 연나라 유물이 망명한 연나라 유민들의 유물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윤내현 교수님 견해를 참고할 수 있는데, 일시적인 2천여리 공격이었고, 이후 상황을 보면 다시 후퇴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용하 교수님 견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123101031612000001
알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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