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2. 15:36ㆍ국명 흐 의미
기사 내용 중
http://m.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
<< 송교수는 이 세 견해 중에서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을 주장했다. 이 견해가 문헌자료와 고고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해석할 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덧붙였다. 이 견해의 약점으로는 대릉하 유역의 청동기문화가 고조선 것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차이는 완전히 다른 정도가 아니라서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하였다.
그는 고조선에 대한 총평을 하는 부분에서 “특히 종족의 분포나 문화권의 범위를 가지고 곧 바로 정치적 영역으로 비약해서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비파형동검문화 분포지역이 고조선의 영토라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요서지역을 고조선의 세력권으로 설정하는 것은 현재까지의 연구를 볼 때 문헌 및 고고자료와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 왕조의 역사는 땅덩어리 가 아니라 그 왕조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고조선사를 민족주의 시각으로 연구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았다. 한편 송교수는 단군과 고조선이 근대에 와서야 우리의 의식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했다. 또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보고 역사적 사실로 보지 말자고 했다.>>
반론
1. 한편 송교수는 단군과 고조선이 근대에 와서야 우리의 의식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합니다.
세종의 지시 사항입니다.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21일 병자 3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단군과 기자의 묘제와 삼국 시조에 대한 치제에 대해서 정하여 아뢰게 하다
그러면 세종의 의식에 자리잡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의정 유관의 의식에 자리 잡은 것은 무엇인가요?
2. 또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보고 역사적 사실로 보지 말자고 했다.
위 기사에 따르면, 송교수 본인이 이렇게 주장 했다 했습니다.
<< 송교수는 이 세 견해 중에서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을 주장했다.>>
역사적 사실로 보지 말아야 한다면서 중심 수도는 이동해서 다니고 참 앞뒤 말이 맞기나 하는지
.......
갑자기 문득
송시열의 송자와
미수 허목의 그 유명한 일이 생각납니다.
정말 갑자기.
송시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8407&cid=46622&categoryId=46622
허목: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447&cid=46622&categoryId=46622
오늘에사 다시 인터넷에서 승부를 겨루니 재미 있군요.
이번 씨름판이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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