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2. 15:16ㆍ국명 흐 의미
단종실록 1권, 단종 즉위년 6월 28일 기축 4번째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황해도 지역에 창궐하는 전염병에 대한 경창부 윤 이선제의 상서문
(중략......)신 이선제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상고하니 이에 이르기를,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적에 환인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어 자주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구(貪求)하므로 아비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三危)·태백(太伯)204) 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弘益人間]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205) 세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니, 환웅이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에 내렸으니, 곧 지금의 묘향산이다.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를 거느리고 곡식을 주장[主穀]하고, 명을 주장[主命]하고, 병을 주장[主病]하고, 형벌을 주장[主刑]하며, 선악을 주장[主善惡]하니,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 일을 주장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게 하였다. 그때에 한 곰[熊]과 한 호랑이[虎]가 있어 같은 굴에서 사는데 항상 신(神)인 환웅에게 기도하여 화하여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다. 환웅이 영애(靈艾)206) 1주(炷)와 마늘 20(枚)매를 주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으리라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얻어 먹고 삼칠일(三七日)207) 을 기하였더니,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호랑이는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웅녀(熊女)가 혼인을 할 데가 없어서 매양 단수(檀樹) 아래에서 잉태가 있기를 주언(呪言)하였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화하여 혼인하자,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호를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요(唐堯)208) 가 즉위한 지 50년이 되는 경인년209) 에 평양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칭하였다. 또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에 옮기어 어국(御國)한 지 1천 5백 년에 주나라 무왕이 즉위하여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이 또 장당경(藏唐京)에 옮기었다가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는데, 1천 9백 8세를 수하였다.」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대저 단군이 평양을 떠난 지 4백여 세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 신이 되었으니, 여기에서 임금 노릇을 하였고 여기에서 신이 되었으니 이 땅을 싫어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기자가 40대(代)를 전하고, 연나라 사람 위만이 왕검성에 도읍하여 2세(世)를 전하였고, 고구려는 7백 5년을 전하였으며, 신라는 병합한 지 2백여 년이고, 고려 왕씨는 4백여 년을 전하였으니, 단군이 평양을 떠난 것은 아득하게 먼데, 평양을 돌아보고 연연하겠습니까? 또 산신이 되어 토인(土人)의 높이고 제사하는 것을 받았으니 어찌 평양에 즐겁게 옮기어 동명왕(東明王)과 사당을 함께 하려고 하겠습니까? 《삼국유사》의 주(註)에서 이른, 환인 천제(桓因天帝)는 곧 유관(柳觀)의 상서에서 말한 단인(檀因)이고, 환웅(桓雄)은 천제의 서자(庶子)이니, 곧 이른바 단웅(檀雄)이라 하겠습니다. 상고 사람들이 그 근본을 잊지 못하여 사우(寺宇)를 창립하고 환(桓)을 고쳐 단(檀)으로 하였으며, 삼성이라 호칭하였으니, 과연 어느 시대에 창건하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난번에 단군을 평양으로 옮기었는데 이성(二聖)은 어느 땅에 두었겠습니까? 이것은 단군이 토인(土人)에게 원망을 일으킬 뿐 아니라 이성(二聖)도 반드시 괴이한 것을 마음대로 하고 여역을 지어 백성에게 해를 끼칠 것입니다. 신이 처음에 오성우(吳成祐)의 말을 듣고 조금도 개의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유관의 소(疏)를 보니 말 뜻이 서로 모순되지 않으니, 어찌 다시 의논하여 신의 뜻을 구하지 않겠습니까?(중략....)
1. 당시에도 삼국유사를 읽고, 이는 현 삼국유사 그대로이다.
2. 전염병에 대해 당시로서는 현대의학적 지식을 알 수 없었기에 선조들의 대처 방안을 살펴 보았다.
3. 그리고 '유관'의 상서문을 살펴 보게 되었고, 환인은 단인이고, 환웅은 단웅이 되었는데, 단군만 추앙한다면 그 선대의 환인 환웅 2성의 원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유관'의 역사적 내용과 옛 터전을 찾고자 한 마음은 정당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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