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고조선이후 정권 승계의 역사

2008. 2. 23. 21:59한민족고대사

                      < 고조선이후 정권 승계의 역사 >


[위만조선]이라고 부르는 역사는 조선의 변방 역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동 시대에 이미 조선이 북부여로 바뀌고

해모수 말기에 번조선은 연나라에서 망명한 위만의 반란사건이 일어납니다.


번조선, 즉 번한은 조선의 통치수단인 삼한관경(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다스림)중에서 왼쪽 제후국에 해당합니다.


위만의 반란으로 무너진 번한은 위만때 이미 망한 것이고

위만정권은 이후에 한나라 무제에 의해서 위만정권이 축출되고

한무제는 요서지방을 잠시 점령하지만

북부여 5대단군인 고두막한에 패함으로써

소위 한사군이라는 사건이 매듭이 됩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고추모(주몽)는

졸본에서 한나라에 대항하여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아들이 없던 북부여 6대단군인 고무서단군의 사위가 됨으로써

북부여의 권력을 장악하여 북부여 7대 단군에 오릅니다.


고추모는 조선의 강역을 그대로 계승한 북부여의 단군이 되었을 때가 기원전 58년이며, 국호를 북부여에서 고구려로 바꾼 것이 기원전 37년입니다.


이것이 고구려 건국 시기에 대한 논란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중국 역사에서 조선에 대한 기록은 철저하게 배제되는데

그 이유는 춘추필법에 의해서입니다.

조선을 기록할 때에는 예맥, 부여, 구리 등 조선을 직접 기록하지 않고

제후국의 이름으로 우회하여 기록하는 것입니다. 

또한 중국사를 부끄럽게 한 사건이나 인물은

기록을 하지 않거나 왜곡 축소하는 것입니다.


고두막한에게 패했던 한무제,  동 시대 한무제의 신하인 사관 사마천은

사기를 통하여 춘추필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남긴 것입니다.


조선은 타 민족에 의해 멸망이 된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북부여로 다시 고구려로 권력 이양이 된 것 뿐입니다.


조선의 47대 단군 [고열가]에서 북부여 1대 단군인 [해모수]로

다시 북부여 6대 단군인 [고무서]에서 [고추모]로 그 계통이 이어집니다.


여기에 조선의 서쪽 변방에 있던 위만이 끼어들 역사는 없습니다.


청태조 누루하치도 나라를 통치할 때

고조선의 삼한관경제를 모방한 우현왕 좌현왕 제도를 두었습니다.


원문 출처 : 창공


 

출처 : 웃으면 장수해요
글쓴이 : 나의 속마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