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은 북부여 조선의 해모수 단군으로

2008. 2. 19. 13:37한민족고대사

단군조선은 북부여 조선의 해모수 단군으로

 

본국 단군조선은 47대 고열가 단군께서 어질고 결단력이 없기에

종실 사람 해모수(解慕漱) 단군이 수유(기자씨) 와 약속하고 옛 서울

백악산을 습격하여 북부여 조선을 기원전 239년에 세운다.

 

국사 책에 나오는 기자의 후손인 기비(箕丕)를 번조선 단군으로

삼았다.

 

이 기비 단군의 이름을 중국 진(晋)나라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지

대로 현재 국사 책에서 부(否)왕이라고 적어두고 있는 것이다.

 

왜 국사 책에 기비와 기준을 강력한 왕이라 했는가 하면,

본국 단군조선의 혁명에 해모수 북부여 단군을 지원하였기 때문이고

연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도라면

연나라에 기씨 가문일 것이라 예측되는 “자지” 를 보내 연나라를 혼란시키고

제후국으로 삼을 만하지 않는가?

 

당대에 인접 국가에서

같은 성씨(子:기자의 성씨.은나라 왕실 성씨)를 사용했다면,

우연히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중국 역사가들은 이 시기의 기씨 가문의 “자지”가 연나라를 3년 간 통치한 것을

숨기기 위해 간신이라 했을 것이다.

 

남의 할배단군 이름도 “으뜸” 의 비(丕)에서 “악하다,나쁘다”의 비(否: 부로도 남)

로 바꾸어 날조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북부여단군조선으로 넘어가는 과정, 기자조선의 기비 기준 단군, 위만

조선의 건국 과정, 기준 단군이 탈출하여 한반도로 건너오는 과정이 세세하게

한단고기는 기록하고 있으며,

중국사서와 거의 동일하다.

 

종래의 국사가 잘못된 이유는

고조선의 영역을 한반도에 심어 두었기 때문이고,

고조선이 1국 2연방(혹은 1국 3연방) 국가의 대제국이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번조선(기후 단군부터는 기자조선)이 얼마나 강성하고 풍요로운 조선 연방 국가인지는 중국 역사가 증명한다.

 

그리고 해모수 단군의 한단고기 역사적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이 증명한다.

 

1국 2연방(혹은 3연방) 국가인 대제국 고조선을 이해 못하니,

어떤 이는 “평양중심설”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요동중심설” 을 주장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기자조선설을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기자위조설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도전의 좌우(左右) 돈은 1국 2연방 국가 임을 표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화폐 단위가 없는 것은

“낮은 단위” 돈 이거나, 연나라에서 조선의 돈을 본 따 만든 것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