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정리

2022. 1. 7. 21:35언어와 유전자학

일단 간단한 정리를 한번 더 합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328286

1. 한반도 여수 안도의 연대 (8천 2백년~5000년전)=홍산 5500년전

이 신석기 시기와 두 지역 유전자만 놓고 보면, 여수 안도---->홍산 으로 이주가 명확

이는 제가 주장한 남에서 북으로의 유전자 입증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하가점 상층 2천 8백년전=서산 대죽리  2천 7백년전

 

 

이 두 가지 사안만 보아도 우리 한반도와 요동의 요하문명은 하나의 문명권이고 한겨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부분들은 더 고찰 연구하면 사실이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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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정리를 통해 우리는 요하 문명이 황제족이 아니라, 우리 한반도 끝자락의 고대 한국인과 같은 혈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기기 좋아하는 중국인이나 일제 식민사관에 쇠뇌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라도 여수 안도라는 섬에 황제족이 살았다 주장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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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설은 보통 우리를 중심에 둡니다.

청동기문화의 기원

인류 역사상 청동기의 발명은 매우 중요하여 인류의 가장 큰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해연안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의 청동기가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청동기가 발견된 유적으로는 발해연안 북부 중국 하북성 당산시() 대성산() 유적과 내몽골 적봉시() 하가점() 유적이 있다.

대성산 유적에서는 초기 청동기시대에서만 보이는 붉은 색을 띤 순구리 순동(, Copper, 중국에서는 (홍동)이라고 함)으로 만든 장식[홍동패식()] 2점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는 대개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동북아시아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초기 단계의 동기로 동북아시아 청동기문화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청동기는 구리[동(), Cu]를 주성분으로 주석[석(), Sn]과 납[연(), Pb]이 합금된 것이다.

다음으로 발해연안의 초기 청동기를 반출하는 유적이 이른바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이다. 하가점 유적은 상, 하 양 층으로 형성되었는데 아래층을 하가점하층문화라 하고, 위층을 하가점상층문화[저자는 이를 남산근문화()라 칭함]라 한다. 특히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에서 4점의 청동 제련 덩어리[동련사()]가 출토되었는데, 이것의 C14 측정연대가 기원전 1900년경으로 검출되었다. 이는 대성산 유적의 순동보다 한 단계 발전한 초기 청동기로서 동북아시아 청동기시대 문화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요동반도 청동기를 반출하는 유적으로 우가촌() 적석총과 양두와() 유적을 들 수 있다. 특히 우가촌 적석총에서는 청동 화살촉[동촉()]·청동 단추[동포()]·청동 고리[동환()]·청동 낚싯바늘[동어구()] 등 소형 청동기가 출토되고 있어 요동반도 청동기문화의 신기원을 이룬다. 그것은 바로 우가촌 유적의 C14 측정연대가 기원전 1500~1300년으로 측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연대보다 훨씬 빠른 시기이다. 이와 같이 요동반도에는 적어도 기원전 15세기경에 이미 청동기문화가 형성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남한의 일부 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문화영역을 한반도에 국한하여 그 기원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이 많이 왜곡된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청동기에는 아연(, Zn)이 함유되었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청동기문화를 시베리아 카라스크(Karasuk)문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의 인류까지도 기원전 8~7세기경에 시베리아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시베리아에서 출토된 청동기에 아연이 함유되었다는 보고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청동기에 ‘아연 함유 운운’하여 시베리아 카라스크 청동기문화와 비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발해연안의 초기 청동기시대의 연대가 기원전 2000~1700년경이고, 요동반도에서 청동기가 반출된 유적의 연대도 기원전 1500~1300년경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베리아 카라스크 문화의 연대[기원전 12~8세기]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1983년 「청동기문화의 비교 Ⅱ(중국과의 비교) - 동경()을 중심으로 본 우리나라 청동기의 기원」에서 동북아시아 청동기문화의 기원은 발해연안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발해연안 청동기시대에서 또 하나 중요한 시기가 바로 하가점하층문화와 상층문화 사이의 과도적인 시기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하가점하층문화와 상층문화 사이에 직접적인 상하 계승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이가, 곧 과도적인 은()나라 말기 혹은 주()나라 초기 즉, 은말주초()가 되는데, 이 시기가 바로 은말주초의 청동기문화가 유입되는 시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설: 한국 고대문화의 형성과 발전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2012. 12. 27., 이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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