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점 상하층 =명도전 출토지 대조

2021. 12. 31. 09:11언어와 유전자학

1. 하가점 하층 문화권 지도

하가점 하층(BC 2300~1600)

 

자료 출처: 고조선문명과 요하 문명, 52쪽, 우실하, 지식산업사

 

 

2. 하가점 하층 문화 에 상층 추가

청동기시대 하가점 하층 문화(BC 2300~1600)-->고급 문명 사회

청동기 시대 하가점 상층 문화 (BC 1000~300)--->비파형 동검

 

하가점 하층(고조선 초기 추정)과 상층은 거의 같은 영역이라 저는 추정합니다.

 

 

3. 고조선 비파형검 분포 지도

비파형 동검 출토 지도

 

고조선 문명의 사회화, 신용하, 391쪽, 지식산업사

지도, 점은 대략 찍은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보시면, 청동검 분포 위치가 북경을 훨씬 지나서 남쪽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하가점 상하층은 분리가 아니라 이어진 것인데,....

이런 추정이 가능한 유물은 '비파형 동검'의 출토 시기입니다.

고조선 문명의 사회화, 신용하, 390쪽, 지식산업사

<그림 9-17> 최근(2017년) 요동 신민시 북외 유적에서 출토된 BC 18세기까지의 것으로 추정된 비파형 동검. 현재 요동지역 출토의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다.

 

BC 18세기 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기원전 1700년 이전 이니

역시 하가점 하층 시절에 이미 우리 비파형 동검 문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하가점 하층 문화를 고조선 문화라고 보는 시각이 나타납니다.

세형 동검으로 본 국경 :

https://blog.daum.net/daesabu/18328316

 

4. 하가점 상층 과 서산 대죽리 유전자 비교

하가점 상층, 서산대죽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4108-8

서산 대죽리 인골과 하가점 상층  100% 유전자 일치

이제 명도전 위치를 보시겠습니다.   완전히 하가점 하층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첨수도, 명도전 기원을 BC 1000년~BC 800경으로 보니 정확히 하가점 하층 말기 상층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입니다.

 

5. 하가점 하층과 명도전 분포 지도 비교

고조선과 동북아의 고대 화폐, 학연문화사, 221쪽, 박선미

220쪽

출토량 , 압록강과 -한반도 서북부 유적수 30, 출토량 21, 330 개

내몽골(218개), 대릉하(684개), 요하 유역(2,601개), 요동 반도(857개)

특히 압록강-한반도 서북부의 출토량은 압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2만개의 화폐를 오늘 세어 본다 해 보십시오.

그것도 3000년이나 흘러 현재 나온 갯수가 이런 정도인데

당대에는 얼마나 양의 명도전 화폐가 사용되었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 압록강과 한반도 서북부의 유적수 30개 에서 21,330 개 에서 나와서 유적수 21 개의 내몽골 218개,  대릉하16개의 684개, 요동 반도 21 유적지의 857개에 비하면 유적수는 10개 정도 많지만, 출토량은 100배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얼마나 부유했는가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그리고 현재 30개 유적지에서 21, 330 개의 화폐인데

생각해 보시면 30개의 집 안 항아리에서 2만 개 이상 나온 것이니, 당시 고조선 가옥 수가 몇 채 였을까요?

여러분 집에 금전과 은행에 맡겨 놓은 돈은 얼마인지요?

대부분 저축을 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최소 20만~30만 채의 가옥은 있지 않았을까요?

2만개의 화폐를 30으로 나누면 대략 한 집에 666개의 명도전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고

요즈음으로 환산하자면 현금 6백 만원 정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직 대략 적인 예일 뿐입니다.)

 

그러면 명도전 유통 갯수는 1개 유적지 당 대략 600개의 명도전이니

20만~30만 의 가옥이 있었다고 보면,

600X 20만~30만 이니  1억 2천만개~ 1억 8천만개의 명도전이 유통 되고 있었고,

금액은 현재 금액으로 대략 한 집에 6백만원이니 30만채 하면=?

너무 금액이 많아 저는 계산이 안됩니다.

 

현 평양 중심과 북경 중심 지역은 부유층들이 모여 살았을 것이고 그외 지역은 보통 서민들 지역임을 감안해서

대략 평균을 내어 보겠습니다.

유적지를 평균 20곳이라 보고 총 갯수 1759개를 대략 한 집당 88개의 명도전을 가지고 있다 추정할 수 있습니다.

88X 20만~30만 이니 =천 7백 60만개~2천 6백 40만개

부유층이 모여 산 대도시가 아닌 보통 도시/고을 평균해도 대략 2천만개의 명도전이 유통되었는데,

몇 백년간의 유통이 있었으니 모든 유통량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다시 절대 평균을 내어 보겠습니다. 유적지가 98곳이니 계산 편하게 100곳이라 하겠습니다. 출토량은 25,690개이니 역시 계산 편하게 25,000 입니다. 1개의 가정당 250개의 명도전을 가지고 있었고 다시 대략 적인 총 갯수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250X 20만~30만이니 =5천 만개~7천 5백만개

부유했으니 가옥이나 인구 수는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다만 최소 대략 숫자입니다.

 

이런 부의 바탕에서 세계 최고의 청동 거울이 나오게 되는 것이고

공자가 '구이' 가서 살고 싶다라는 부러운 동경이 나오는 것이지 않을까요?

만약 고조선(구이)이 국방과 경제가 약한 나라였다면, 그들의 싸구려 식민사관 생각처럼 '신화'속 나라라면, 노나라 공자가 부러워할리도 없겠지요.

의식주가 풍부하니 굳이 남의 것을 뺏지 않아도 되니 '군자국'이 된 것이지

춥고 배고픈데 무슨 염치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런 엄청난 규모의 국력으로 자국 화폐는 만들지 않고 소국 연나라 화폐-초중기 연나라는 상당히 약소국이었습니다-인 외화를 보유하고 있었을까요?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이고,

이를 통해 추정해본  고조선의 국력과 경제력 수준이었습니다.

다시 언급하지만 '대략' 과  '최소' 수준입니다.  

 

저는 처음에 고조선의 영토가 평산 과 석가장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고-이는 박선미 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간 명도전 국적을 더 강력하게 고조선의 것이다 주장 못했습니다만, 위 지도처럼 우리 명도전 출토지, 하가점 상층 유전자 일치, 비파형 동검 출토지 등을 통해 오늘 부터 더 강력하게 주장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래도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라고 죽자사자 우길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엄청난 양의 명도전 화폐가 유통 되었는데 왜 고조선 말기에 사라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조선 화폐는 동전 형식의 '명사전' '일화전' 으로 변합니다.

처음에는 고조선문자/명도전을 새기고 싶었을 것인데 원형의 둥근 화폐에 안타깝게도  우리 상형한글 고조선 문자가 들어갈 만한 공간이 안나옵니다. 우리 문자는 세로로 2~3개 정도의 형태가 있는데 둥근 형태의 옆으로 적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화폐에 문자를 적은 법칙이 사라지게 된 것이고 후대 중원 한자의 유입으로 우리 고조선 상형 한글이 사라지게 지게 된 것입니다. 사용하지 않게 되니 잊혀지게 됩니다.

 

기억력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서기가 일반적인데, 그 1961년 이전에는 단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대략 40년만 지나도 그런 일이 있나 합니다. 지금 문자와 신문방송이 있는 시절도 이러한데, 고조선 말기 소통 방식이 제한된 시대에 얼마 있지 않아 고조선 상형문자는 잊혀졌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 고려의 화폐를 거쳐 조선시대 화폐가 주조되면서 천자문이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은 고대 고조선화폐/명도전 의 양식을 후대 본받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기초 한자 공부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고조선 역사, 배달 역사, 환국 역사입니다.

 

이래도 개벽이라 안 하실 것인가요?

 

쌍시름의 승자, 바로 접니다. 룡봉.

 

 

6. 한민족 의복과 복식재료 및 양식 지도

그래도 의심을 하실 수 있으니, 의복 과 기타 장신구에 대한 지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복식과 장신구 지도

 

출처: 고조선 복식문화의 발견, 박선희, 지식산업사, 470~471쪽

 

항목 1. 새김무늬 가락바퀴 출토지

      2. 청동장식단추 출토지

      3. 나뭇잎모양 장식 출토지

      4. 긴고리모양 허리띠 장식 출토지

     5. 긴 네모모양 갑편 출토지

     6. 굽은 옥과 옥장식단추 출토지

     7. 절풍 양식 관모 착용 지역

  강역= 장식 기법과 염색 확인 지역 , 복식재료와 복식양식 확인 지역

 

이 정도 입증이면, 누구나 이제 우리가 누구인가, 왜 일제와 맞서 투쟁을 했는가?

왜 우린 참 세상,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가 아실 것입니다.

청동 장식 단추가 현 북경과 울산까지 이어져 나타나는데,

식민 사학자들은 왜 저 중국인들처럼 우기면서 더 우겨서 울산까지 중국 영토다 지도를 긋지

않는지 몰라요?

 

그게 공부라고 온갖 울부짖음을 다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