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고조선 문자 연재-12

2011. 1. 19. 10:22단군고조선문자(상형한글)출판용

5장. 초기 해석과 첨수도

1. 맨 위 문자를 고조선의 돈이란 표식의 "돈" 이라 해석

여기서는 얼토당토않은 해석을 보여드립니다. 이런 실패를 통해서 참 해석을 얻은 것입니다. 지금부터 당시에 해석이 얼마나 어려운 미로와 어두운 동굴 속을 더듬어왔는가 살펴보겠습니다.

1) 돈이란 문자가 맨 위에 있는 화폐문

첨수도.hwp

 

 

 2) 돈이란 문자가 맨 위에 있는 화폐문

 

 

 

 

3) 돈이란 화폐 단위가 없는 화폐문

 

 

혹은 "돈" 단위가 들어있는 것은 모(母), "돈" 화폐단위가 없는 것은 자(子)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군요. 그래서 자모전(子母錢)이라 했을 수도 있겠군요.

 

 

2. 화폐의 첫 문자를 갑골문 "도(刀)" 와 비교

은나라 갑골문자 도(刀)입니다.

 

 

   刀

 

 

 

지금 한자와는 방향이 다르지요. 위 은나라 문자에서 왼쪽으로 방향 회전하여 세웁니다.

 

 

 

 

 

획을 이어서 고조선 한자 돈을 만듭니다.

 

 

 

 

      명도전   첫번째 문자,   첫번째 문자 다른 모양

 

 

한자 사전에 실린 韓國 韓字   "돈"

 

 

이 단어에서 우리 고조선의 돈이 도(刀)의 모양인 첨수도(尖首刀)와 명도전(明刀錢)에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은 고조선에서 "돈"으로 사용되다가 한자 문자 정착 시기에 모양이 힘 력(力)과 겹치므로, 구별하기 위해, 윗선을 잘라서, 중간선에 사선을 긋게 된 것입니다. 즉 고조선 시대에 칼 모양의 도에서 돈이 되었음을 알아야만, 이 문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문자가 거의 똑 같은  "힘 력(力)" 이 화폐 단위로 사용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역시 돈 "돈"으로 해석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여기에서도 해석에서 많이 헤매었지만, 올바르게 접근한 또 하나의 사실은 "돈 이란 韓國 韓字 가 칼 모양에서 돈이 왔음" 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즈음의 수사 내용을 토대로 또 중요한 하나의 사실을 터득합니다. 바로 첨수도(添首刀)의 중요성입니다.

 

 

 

3. 첨수도의 중요성을 터득

<첨수도(添首刀)>

첨수도(添首刀)는 명도전 이전의 화폐이고, 침수도(針首刀)는 첨수도(添首刀) 이전의 화폐입니다. 지금은 중국 화폐 전문가들이 거의 모두 침수도와 첨수도를 북융(北戎: 북쪽 오랑캐)의 화폐라고 하는데, 고조선 화폐다 말하기 싫어서 북융(北戎: 북쪽 오랑캐)이라 호칭하는 것일 뿐 사실상 고조선의 화폐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장박천님의 논문 중에 첨수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첨수도는 하북성 경내에서 안 나온다는 것이고, 명도전 위에만 문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첨수도 위에도 문자가 있는데, 죽(竹), 기(箕), 어(魚), 명(明)이라고 해석하며 이를 고죽, 기, 어, 명 이라는 씨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북성에 관해 네이버 백과사전을 찾아보겠습니다.

 

 

<<약칭으로 기(冀)라고도 쓴다. 성도(省都)는 스자좡[石家莊]이며, 중국의 화베이[華北] 지역에 속한다. 베

 

 

이징[北京] 직할시와 톈진[天津] 직할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보하이만[渤海湾]에 인접해 있다. 춘추전국시

 

 

대에는 연(燕) 나라와 조(趙) 나라 지역이었으며 한(漢) 나라와 진(晋) 나라 때에는 기주(冀州)·유주(幽州)라

 

 

고 불렀다. 당(唐) 나라 초기에는 하북도(河北道), 원나라 때는 중서성(中書省), 명나라 때는 경사(京師) 지

 

 

역에 속하였다. 청(淸) 나라 때부터 독립된 성을 이루었고, 1928년 현재의 명칭으로 불렀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연나라 지역에서 명도전의 전 단계인 첨수도가 안 나온다는 것이니, 명도전의 전 단계인 첨수도가 안 나오면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증거로 청동기 유물이 더 있습니다. 중국 요령성 객좌현에서 기후방정이 발견되어 기자가 고죽국(당시 조선의 제후국)으로 이동했음이 청동 유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한단고기에 따르면, 기씨 가문은 연나라와의 전투에서 단군조선을 도와 전공을 세우고,화폐를 통한 무역에 종사하여 고죽국에서 영향력을 넓혀 나갑니다.(거의 고죽국의 지역을 장악 통치한 듯 보입니다. 이를 이전의 역사에서는 기자조선이라 부르며 모두 왕이라 칭했습니다.) 그 후 기자의 후손인 기후가 완전히 고죽국을 장악한 후, 제후가 되는데, 한단고기에서는 번조선에 단군이 된다고 봅니다. 이 시기에 명도전이 나오는데, 왜 기(箕)를 새기지 않고, 명(明: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비슷한 문양을 새겼는가는 조금 의문입니다만(제가 말씀드렸듯이 아사달의 동이족 고유 문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역사적인 전개를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즉 명도전의 국적 문제도 문제지만, 첨수도가 더 중요한 겁니다.

 

다시 중요한 결론을 정리해 봅니다.

 

1) 명도전의 전 단계인 첨수도가 연나라 지역에서 발견 안 된다.

2) 첨수도 위와 네모 솥(혹은 향로)에도 문자가 있는데, 기자와 고죽국의 존재를 확인해 준다. 이는 한단고기의 역사적 서술과 일치한다.

 

하지만 첨수도의 중요성은 인식했지만, 상형한글인 줄 모르고 지속적인 엉터리 해석을 계속합니다. 좀 지루한 수사로 흐르고 있지만, 제가 구체적인 극적 실마리를 찾기 위한 과정이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봐 주십시오.

첨수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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