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대한민국 공무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도시는?

2010. 1. 5. 11:16김해,고성,합천,진주,부산,양산,밀양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여자에게는 일반직 공무원이 편한데 왜 검찰수사관이 되기로 마음먹었냐고.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영원히 못할 것 같다. 나도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에, 내가 왜 창원지방검찰청의 밀양지청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아앗, 죄송- 제목에서 낸 퀴즈의 정답을 알려드려야지. 정답은 "밀양"이다. 왜 밀양이냐고? 그건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으면 납득하게 된다.

 

 

 

 

보물 147호 밀양 영남루(이미지 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아홉 살인가 열 살인가, 아무튼 굉장히 어릴 때다. 외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지금은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때는 제가 아홉 살인가 열 살인가, 암튼 어렸다니까요)가 "좋은 데가 있다."며 차를 세우셨다. 대한민국 3대 누각 중 하나라는 영남루 앞이었다. 나는 그때 정확히 누각이 뭐하는 덴지 잘 몰랐다. 아무튼지, 맑은 강이 흐르고 바람이 앞뒤로 숭숭 통하고, 천국 같았다. 되게 좋은 데로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귀신 구경 하러 가자!"며 나를 낚아챘다. 어둑어둑한 사당 같은 데로 올라갔는데 사당 안벽에 소복입고 피 흘리는 여자 귀신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게, 밀양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이다.

 

그리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된 나는, 소설가 김영하의 팬이 되었다. 당시 그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같은, 지금과는 다소 다른 스타일의 덜 대중적인 소설을 쓰고 있었다. 피폐한 고3이어서 그런 책을 좋아했나보다.

 

 

아랑은 왜

김영하

문학과지성사 2001.02.01

 

그러다가 김영하의 장편 <아랑은 왜>가 나왔다. 당장에 달려가서 사 보았다. 아랑 전설을 새롭게 쓴 소설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한국 현대문학에 회의를 가지고 있는(즉 일본 소설만 엄청 읽는) 또래의 친구들에게 내가 가장 많이 추천하는 책이다. 줄거리를 미리 말하면 하나도 재미없으니, 말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나와 밀양 사이에는 뭔가 인연이 있음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근무지 지원신청서에 적었다. 1지망,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 26호 아랑각 또는 아낭사(이지미 출처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퀴즈의 답이 왜 "밀양"인지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아랑 전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그러니까 조선 명종 때, 명종 재위기간이 1545~1567년이니까 까마득한 옛날이다. 밀양 윤 부사가 갑자기 밤도망을 놓는 바람에 밀양 부사 자리가 비었다. 나라에서는 방을 붙였다. 밀양 부사로 갈 사람! 그래서 새 부사를 뽑아 밀양으로 보냈다. 그런데, 새로 내려온 부사는 그날밤을 못 넘기고 죽었다. 또 보냈다. 또 죽었다. 또 보냈다. 또 죽었다...

 

나라에서는 난리가 났다. 밀양 부사 자리를 비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과거시험 안 봐도 좋으니 그냥 자원하면 무조건 보내준다고 그랬다. 그리하여, 과거에 몇 번이나 낙방한 용기있는 신임 부사가 이번 기회에 죽어도 좋으니 벼슬 한번 해 보겠다고 밀양 부사로 갔다.

 

용감한 신임 부사, 첫날 잠자리에 누웠다. 밤이 되니, (고전적인 스타일로 간다)바람이 쌔앵 불면서 장지문이 덜컹덜컹하다가 훽 열렸다. (고전적이라니까요)소복 입은 귀신이 피 흘리고 들어왔다. 그래서 신임 부사, 클래식하게 한마디 했다.

"네 이년! 네가 귀신이면 썩 물러가고 사람이면 말을 하거라!"

소복녀는 흐르는 피 닦고 대답.

"예 저는 귀신이지만 말을 하겠습니다."

 

...웃어주세요.

 

"저는 유모의 꾀임에 빠져 달밤에 달구경하러 영남루에 나갔다가, 관노에게 욕을 보이고 칼에 찔려 대밭에 버려졌습니다. 옳게 묻히지 못한 저는 저승에도 못 가고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 부디 제 시신을 찾아 묻어 주시고 유모와 관비를 정히 처벌하소서. 그들을 관아 뜰에 불러모으소서. 내 혼이 나비가 되어 범인의 머리 위에 앉겠나이다."

 

신임 부사는 발령 첫날밤부터 잠도 못 자고 고소사건 접수를 해야 했다. 아, 피곤하겠다. 다음날 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노비들이 관을 메고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도 죽어나오니. 그러나 부사는 펄펄 살아 방문을 열어제꼈고 노비들은 겁에 질려 엎드려 부사의 명을 기다렸다. 부사는 유모와 관노와 이방 호방 다 불러모았다. 그리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 하고 소리질렀다. 때마침 나비가 한두어마리 날아와 범인 머리 위에 앉았다. 그리고 사건종결. 법원으로 이송... 같은 건 없고.

 

이건 너무 고전적이고 너무 지어낸 얘기 같아서 싫으신 분, 김영하의 <아랑은 왜>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이제 공무원이 가장 무서워하는 도시가 왜 밀양인지 아시겠죠? 발령받아온 첫날, 방에 누워 자는데 귀신 나올까봐.(본인의 경우, 발령 첫날 축하주를 너무 마셔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잤다. 아랑이 왔다가 술냄새에 기절해서 그냥 포기하고 옆방의 피해자지원센터 직원에게로 갔다는 후문이...)

 

 손진영 기자

 

 

출처 : 검토리가 본 검찰이야기
글쓴이 : 검토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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