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김영진의 영화랑] 영화 만드는 도시, 부산

2009. 12. 5. 10:54김해,고성,합천,진주,부산,양산,밀양

삶의 시간성을 간직한 부산은 인간적인 도시다. 그게 우리가 앞으로도 부산 소재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볼 가능성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신문사 영화담당 기자들에게서 취재차 전화가 온다. 대개는 비슷한 아이템인데 기자로서 각자 차별성을 갖고 먹고 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부산을 소재로 한 영화가 왜 많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따져 보니 올해만 해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해운대'를 비롯해 '애자'가 그 뒤를 따랐고 제목부터 지역색을 풍기는 '부산'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곧 개봉할 '바람'이란 영화도 부산이 배경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문제는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연의 일치가 아닐까, 라고도 넘겨보지만 부산을 소재로 해서 얻는 이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해운대'에서 잘 활용했듯이 부산은 초현대적인 외관과 근대 이전의 풍광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특이한 도시공간을 갖고 있다. '친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 그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도시의 후미진 곳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부산이다. 동시에 부산 특유의 사투리도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가 환기시키는 핏줄같은 끈끈한 결속감을 연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의 강력한 어감은 다른 지역 사투리로는 당해내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흥행에 성공한 부산 소재의 영화들이 추구했던 것도 이런 요소들이었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들을 깨닫는 등장인물들의 상실감, 그리움 이런 것들을 그려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동시에 껴안고 있는, 그것도 다양하게 껴안고 있는 드문 촬영장소로서 적어도 한국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공간일 것이다.

사방에서 개발론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에서 욕먹을 소리인 줄은 알고 있지만 부산만은 제발 예전 정취를 간직한 공간을 무조건 새 것으로 대치하는 불도저식 개발만은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영화산업이 불경기를 맞고 있어서 어쩔지 모르지만 부산이 영화촬영지로 매력적인 공간이 된 것은 바로 옛 것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산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아진 것은 영화업계의 지극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도 크다. 부산이 영화촬영 유치에 적극적이고 협조도 잘 되는 도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각 지역마다 영상위원회가 있지만 한국에서 제일 먼저 생겼고 운영도 꼼꼼하게 하는 곳이 부산영상위원회다. 부산은 영화제를 통해 영화계에서는 국제적 브랜드가 생긴 도시이기 때문에 이쪽으로 계속 밀어붙이면 영화를 보여주는 도시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도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전 우리가 살던 공간의 시간성을 보존하는 것은 억만금을 줘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삶의 편리와 진보라는 개념에 떠밀려 마구 부서지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삶의 시간성을 간직한 부산은 인간적인 도시다. 그게 우리가 앞으로도 부산 소재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볼 가능성이 큰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부산일보 | 39면 | 입력시간: 2009-11-26 [16:18:00]

출처 : Marie의 문화세상(부산)
글쓴이 : Mari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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