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명숙 소설가 일기] 장터 국밥

2009. 12. 3. 12:31봉사와 시,소설

배너남지 다녀왔다. 일 년에 한 번 다가오는 묘사. 호박잎된장국과 파무침, 무말랭이무침으로 아침상을 차려주는 큰형님, 혼자 살림이라선지 조촐함이 차라리 눈물겹다. 아침 든든히 먹고 갔지만 큰형님 정성에 밥 한 그릇 또 먹었다. 아주버님과 조카들은 산소 가고, 큰형님과 목욕탕 지키고 있는 작은형님한테 가서 놀았다. 각각 맏며느리로 살아낸 이력들이 만만치 않은 세 맏며느리들. 아직도 나를 아주 동생으로 보는 형님들이 있어서 아주 새댁이 된 기분.

마침 남지 오일장이 서는 날, 점심은 장터국밥으로 결정되었다. 큰형님도 작은형님도 고기 들어간 음식은 질색이라 나만 따라갔는데, 마치 옛날 사진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가마솥에선 선지국이 설설 끓고, 안과 밖에 손님들이 득시글득시글. 남편은 맛집기행 쓰는 사람하고 같이 오면 딱이겠다고, 이제까지 남지 다니면서 이런 델 왜 못 와 봤을까 신기해 한다. 나이 지긋이 먹은 남자들이 뜨끈하고 엄청 양이 많은 국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고향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딱 맞춤한 장소. 아주버님한테 저번에 큰어머님 문병왔다 내려가는 길에 남편이 술 취해서 주정부렸다고 일러바치고, 시장 들러 참기름과 청각을 샀다.

부산일보 | 20면 | 입력시간: 2009-11-30 [09:05:00]

출처 : Marie의 문화세상(부산)
글쓴이 : Mari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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