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조선군대가 대마도에 있었다니…

2009. 12. 1. 19:58단군조선가림토홍보글

 

 

조선군대가 대마도에 있었다니…

 

  

최근 일본사를 연구하는 김문길교수가 잇따라 대마도가 한국땅이었다는 자료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된다”, “일본이 자꾸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니까 대응차원에서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김교수의 자료를 접하다보니 “엇 정말 대마도 우리나라땅일 수도 있겟네” 내지는 우리나라가 매우 큰 영향을 차지했었던 곳이라고 당초 생각을 크게 바꿨습니다.

 


크게 보면 두가지 점이 일리가 있습니다.

첫째, 12세기 대마도 원주민들이 한국어를 변형시켜 사용해왔다는 점.

둘째, 조선시대 왕이 대마도 무사들에게 내린 교지(敎旨)가 있을 정도로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이 있었다는 점.


교지는 일종의 지침서보다 성격이 강한 명령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마도에 군대를 연합체형식으로 운영했다고 볼 수 있네요. 

실제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인 도요토미히데요시가 대마도를 선제공격지점으로 인식했었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는 증거물입니다. 

1592년 토요토미 히데요시 부하가 만든 '팔도총도'라는 지도에도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표기하고 '공격대상'으로 표기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에 대마도 영토가 그려져있는 팔도총도


이번에 공개된 교지는 2건입니다. 

김 교수가 수집해 공개한 교지 중 하나는 1555년 5월 타이라 마쓰(平松次)에게 내린 임면장으로 내용은 '平松次武士께 승의부의(昇義副尉) 호분위사맹(虎賁衛司猛)을 수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승의부의'는 무사란 뜻이고 '호분위사맹'은 무사 중에서 최고 직위에 해당하는 계급이란 의미입니다.

 

  특히 교지의 크기는 74 cm X 94 cm 의 조선 임금의 옥쇄가 찍혀있습니다. 또 하나의 교지도 1569년 8월에 내린 것인데 대마도 무사 노부 도끼라(信時羅)에게 무사의 관직을 수여한다고 써있습니다.


내용을 토대로 추측해봤을때 이건 대마도 군대를 움직이는 주체를 조선국왕으로 두고 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김교수도 "과거 대마도 관료들에게 조선 국왕이 교지를 내렸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누구에게 어떠한 보직으로 전달되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번에 교지를 확인해 본 결과 대마도는 과거 우리의 영토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교지는 국왕이 신하게게 내린 관직으로, 대마도는 우리의 부속영토이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수십차례 내렸다"며 "조선국왕이 대마도 신하들에게 내린 교지는 대마도 일본 사료관에 17여건을 비롯해 동경대와 국립자료관 등에 40여건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교지보다 더욱 강력한 증거물을 볼까요.

고대부터 대마도는 우리나의 부속섬(임나땅)이었고 최초의 원주민들은 도베아히루(卜部阿比留), 다시말해 도래인(渡來人)으로 12세기 한국어를 변형시켜 사용했다는 김교수의 주장입니다.

김교수가 200년전 것으로 추정되는 대마도식 한글모습이 기재되있는 고문서를 일본의 한 대학 고문서실에서 발견돼 2년간의 조사를 통해 주민의 글이 한글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하니 귀가 매우 솔깃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마도에서 보면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가까운데(부산에서 쾌속정으로 1시간) 아니 그럴까 싶습니다.


 1876년 대마도에서 발간된 '일문전'이란 문헌에 한글과 매우 유사한 문자가 기록되어 있어 과거 대마도 원주민들의 언어는 한글이었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대마도는 부산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지역으로 1368년 고려 공민왕은 흉년이 들때마다 백미천석을 보내기도 했으며 대마도 원주민들은 원래 조선언어인 한글을 쓴 것으로 판단되는 글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한글이 전해졌을까. 옛날 아마노오모이카네신(天思兼神)이 대마도 원주민 우라베아히루(卜部阿比留)씨족에게 전해져 사용되었으며 아히루씨족은 대마도 원주민으로 지금도 후손들이 대마도에 살고 있다는 게 김교수의 설명입니다.

  

대마도 원주민들이 사용한 한글은 모음과 자음이 합쳐져 한 글자를 이루고 표기는 한글이지만 뜻은 일본어입니다.

 

 또 어떻게 해서 글이 이루어졌는지 원리도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을 아히루(阿比留) 글이라 하고 신사에 걸려 있으며, 아히루의 원직업은 신사의 직분을 가진 자들이라고 합니다..

 

흔히 고려, 조선 역사를 훑어볼때 장군들의 때때로 한 대마도정벌도 일본에 대한 전면적이라기보다는 조선 부속섬으로 ‘지도’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계의 시각입니다.


실제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정부가 대마도에서 한글사용을 금지, 현재 사실상 자취를 감췄으나 여전히 일본 현지 신사에서는 발견되고 있으며, 일반인의 집에는 한글과 매우 유사한 부적이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현지인조차 자신들이 한글을 본적이 많다고 말할 정도라니 증거는 대마도 내에서도 아직 많이 있습니다. 


다음은 조선왕조에 대마도관련 기록을 살펴본 국학자의 글 중 일부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조에는 대마도는 한때 경상도 계림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도 대마주가 옛날 계림에 속해있었다고 되어 있으며 1436년 대마도주가 조선에 대마도를 편입시켜줄 것을 상소해 그를 조선관직인 태수로 봉하고 지역 유지들에게도 조선 관직인 만호직을 주어 조선의 땅으로 관리해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일본이 명치유신때 천하통일하면서 대마도를 지배하기 시작했고, 명치유신 이후 구한말에 들어서면서 미국, 영국등 서유럽 강대국과 손잡은 일본의 세가 커지면서 조선과 대마도 관계가 변했고 이러한 어수선한 국제정세 틈바구니 속에서 대마도는 1877년 일본 나가사키현에 어느 순간 편입되어버렸다. 이때 편입되기 전까지 대마도는 조선 세종조 이래로 500여년간 조선땅에 속해있었다.“


놀랍지 않습니까. 대마도를 우리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증거가 아직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경남 마산시의회가 앞서 제정한 대마도법을 다시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허성권기자

출처 : 경남일보 파워블로그
글쓴이 : GNNEWS21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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