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4. 15:29ㆍ단군조선가림토홍보글
문화재 사범단속, 강반장이 떴다!!
-행정안전부 최고기록공무원에 선정된 사범단속계 강신태 반장 인터뷰
행정안전부는 지난 11월 25일, 다양한 공직 분야에서 자신의 직무에 대해 보유한 기록을 심사해 ‘대한민국 최고 기록 공무원’을 선정했다. 모두 83건의 최고기록 가운데 문화재사범 단속 업무 분야에서 약 25년간 7300여점의 도난 문화재를 회수한 문화재청 문화정책국 안전기준과 사범단속계 강신태 반장이 최고기록공무원으로 선발되었다. 최고 중의 최고, 그 영광의 주인공 강신태 반장을 블로그 기자가 직접 만나 보았다.
<문화재청 문화정책국 안전기준과 사범단속계 강신태 반장은 "대한민국 최고 기록 공무원"선발에서 약 25년간 7300여점의 도난 문화재를 회수한 기록을 인증 받아 최고 중의 최고에 올랐다>
강신태 반장을 인터뷰 하러 가는 길에 블로그기자의 마음은 매우 떨렸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영역에 오른 달인이자, 적자생존의 경쟁사회에서 최고의 고수로 인정받게 된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설레임도 물론 블로그기자의 마음을 떨리게 했지만, 괜히 죄 지은 것 없이 착하게 살아가면서도 파출소 앞에만 지나가려면 가슴이 쿵닥쿵닥 뛰고야마는 소시민의 소심함을 가진 블로그기자가 25년간 문화재절도범을 상대했다는 강신태 반장을 만나러 가는 것 또한 참으로 떨리는 이유였다.
첫인상, 깊은 눈빛, 두터운 손
문화재청 문화정책국 안전기준과 사무실에서 만난 사범단속계 강신태 반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블로그기자에게 “반갑습니다”라고 먼저 악수를 청했다. 문화재청 문화정책국의 안전기준과는 문화재 안전관리와 점검을 담당하는 부서로 문화재 재해·재난에 관한 사항을 총괄하고 국가 위기나 재난/재해시, 문화재에 관한 제반 계획수립과 관리를 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부서이다. 강신태 반장은 이 곳 안전기준과의 사범단속계에서 약 25년간 문화재절도범을 상대하며 소실 위기의 도난문화재를 회수하는 역할을 해왔다.
“문화재청에서 처음 일을 하게 된 것은 1983년에 신안해저유물 발굴조사원으로 공직을 시작하게 됐고, 1984년에 완도 해저유물 발굴조사원을 거쳐 당시 기피부서였던 문화재관리국의 사범단속반에 차출되어 이쪽 일을 시작하게 됐죠.”
첫 인상에서 기자를 더욱 주눅 들게 했던 강신태 반장의 깊은 눈빛과 악수를 청했을 때 그 딱딱한 손의 질감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학창시절 마라톤, 권투 등 안해 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고, 강원도 대표선수로 대회에 출전할 만큼 운동신경이 뛰어났었다고 한다. 사범단속계의 일이 특수임무인 만큼 자신의 몸을 보호할 능력을 갖춰야 했던 사범단속계원의 조건에 적임자로 차출되면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범인은 도망가야 할 운명, 강반장은 잡아야 할 운명
“젊었을 때는 육탄전도 많이 했지, 한번은 범인이랑 4층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1층까지 거의 굴러 내려온 적도 있어요, 어쩔수가 있나? 범인은 도망가야 하고, 나는 잡아야 하는데,,,,,, 아마 도둑 놈들은 나를 제일 미워할 거야”
범인들은 도망가야 할 운명이었고 강신태 반장은 그 범인을 잡아야 하는 운명이었지만 언제나 행운의 여신은 강신태 반장의 운명에 손을 들어줬던 듯했다. 하지만 25년간 7500여건의 도난문화재를 회수했다고 하니, 비단 행운이 따라서 만은 아닐 것이다.
“문화재 도난 신고 받고 현장에 나가서 참담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누구의 소행인지 짐작이 가요. 아!하면 어!하는 거지 뭐.”
그것은 운이 따라줘서가 아니라 한 부서에 오랜시간 몸을 담으면서 자신의 직무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하였고, 문화재 도난 이후 유통경로를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라고 봐야할 것이다. 강신태 반장은 문화재 도난 접수 후 현장에 나가서 상황만 보더라도 어느 범인의 소행인지 감이 온다고 했다. 만약 도난 문화재의 거래가 성사된다면 행방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신속한 대처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신고가 접수되면 353개 유관기관에 통보를 해주고 해외유출과 국내유통을 차단하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처리하며 그 후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비슷한 수법이나 문화재 유형별로 분석하여 수사를 하게 된다고 밝혔다.
<문화재 도난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 조사에 앞서서 353개 유관기관에 신속히 통보하여
국내유통과 해외유출을 차단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업무처리에 있어서 철두철미한 성격의 강신태 반장도 스스로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권이 개입된 문화재 관련 범죄 일을 오랜동안 하다보면 협박이나 물리적 위협을 가해오기도 하는데, 저한테는 그런 일은 아직 한번도 없었으니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 말도 따져보면 결코 운으로 얻어진 결과만은 아니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범인들을 보면서, 결국 사람의 마음이란 다 똑같이 선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가 검사한테도 사정을 설명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사범단속계 일을 오랜동안 하다 보니 동일한 사람을 여러번 잡아 구속시키기도 하고, 무거운 형랑이 내려지기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을 만나면 서로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고, 여러 말 대신 서로 부등켜 안는 순간이 있다고 한다.
<책꽂이에 있는 틱낫한의 책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가 블로그기자 눈에 들어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강신태 반장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음을 느낄수 있었다>
소중한 문화재가 제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
강신태 반장에게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범인을 잡아서 정의감에 사로잡힐 때 보다는 소중한 문화재가 제 자리에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본 순간이 가장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교과서 적인 답변을 또박또박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내내 블로그기자의 눈을 응시하고, 처음에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의자를 책상 쪽으로 자꾸 더 가까이 끌어 당겨 앉으며 말을 이어가는 강신태 반장의 습관에서도 그의 진정성이 베어 나왔다.
<강신태 반장은 도난 문화재가 회수되어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 있을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범죄의 수는 증가하고, 범죄는 점점 지능화, 집단화
하지만 고수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2003년에는 8건에 그쳤던 문화재 도난사고가 2004년을 기점으로 매해 늘어나고 있다” 며 잠시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예전에는 도난범들 사이에서도 일종의 룰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국보급 문화재는 건들지 않았던 것이죠. 워낙에 거래가 어려운 거물들이기도 하지만, 도난범들도 문화재의 가치를 아니까 국보급은 손을 대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마구잡이식으로 도난이 발생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특히 1995년 시작된 TV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이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알리는 일도 했지만, 문화재의 가치를 곧 돈으로 환산해 물량화 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소수의 전문범들이 도난을 했다면, 이제는 마구잡이식으로 문화재 도난으로 문화재가 파괴되고 있어서 피해가 더 막심하다고 했다.
이에 문화재안전과에서는 첨단 도난방지 시설을 설치하여 문화재 도난을 예방하고 있고, 문화재에 대한 원본사진을 찍어두어 도난시 유통을 막기 위해 사진을 찍어둘 것을 홍보하고 있다고 했다. 도난문화재 도록 발간 및 배포도 그런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문화재 전담 수사팀을 설치해서 범죄에 적극 대응하고 문화재사범 단속을 위한 검·경찰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젊었을 땐 참 범인들과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쫒아다니기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런 노하우들을 체계화시키고, 유관기관의 담당자들에게도 전달해 주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 수사연수원이 생겼는데 거기에서 문화재 사범 관련 강의도 해주고 있어요” 자신이 몸소 겪으면서 쌓아온 노하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데 망설임이 없는 강신태 반장이었다. 과연 고수는 역시 뭔가 다르구나, 대인배에 걸맞는 행동이라고 블로그기자는 생각했다.
<강신태 반장의 강의자료- 자신이 체득한 직무에 관한 노하우를 다른사람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데서 강신태 반장의 일에 대한 열정과 문화재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런 영광도 생기네요
“72년도에 사범단속반이 처음 생겼고, 제가 들어올 84년 당시만 해도 소수인원으로 참 어려웠구요. 도난 현장의 처참한 상황이라던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잠복과 야근에 힘이 들기도 했는데, 그냥 열심히 일하다 보니 이런 영광도 생기네요.”라며 강신태 반장은 1548건의 최고 공무원기록 심사중에서 자신이 최고 중의 최고가 된 사실을 덤덤하게 표현했다.
<대한민국 최고공무원 인증서>
2009 대한민국의 진짜 고수를 만나다
대한민국 최고기록 공무원 강신태 반장을 처음 대했을 때 느꼈던 깊은 눈빛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내 쑥스러워했던 그의 선량한 웃음 속에서,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해주는 명쾌한 그의 통찰력 속에서 고수의 면모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최고 공무원의 영광도 잠시, 다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업무를 보고 있는 강신태 반장>
▲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박홍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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