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4. 12:43ㆍ명도전 문자 연구
역사적 사실-해(태양)나라 돈
자모전(子母錢)과 조선통보(朝鮮通寶)가 고조선 시대에 있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온전한 역사를 복원해 봅시다.
해(太陽)문양이 새겨진 환단밝달조선 화폐(명도전,자모전)는
근대조선 초기까지 혹은 후기까지도 발견되었습니다.
세종께서 화폐 발행을 하시면서,
이 화폐와 화폐 위에 새겨진 문자를 보았습니다.
해독이 어려워서 인지 아니면 의도적인지
화폐에는 이 고대한글 문자 없이 조선통보(朝鮮通寶)화폐만
1423(세종 5년)에 발행합니다.
처음에는 아마도 후대의 상평통보처럼 한자 사용도
생각해 보셨을 겁니다.
세종께서 훈민정음 반포한 해가 1443년(세종 25년)
입니다.
그 중간 딱 20년 동안 세종과 집현전 학자분들은 이 문자
해독에 매달렸을 겁니다.
저처럼 거의 전세계 문자 자료를 다 모우고 연구하셨겠지요.
그 해독한 결과
고대 한글 사용법을 아셨고,
한자 보다야 훨씬 쉽지만
규칙이 없어 어려운 문자를 티벳인도구자랏 문자의 체계에
맞춰 훈민정음을 신제(新制)하신 것입니다.
문자의 모습과 순서는 티벳 문자에 결정적으로 기준을 삼았는데,
이 티벳 문자는 다행히 우리 고대한글의 일파인 브라미문자의
후손문자로 큰 원리에는 벗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브라미한글보다 우리 고대한글이 더 앞서는 이유는
모음에 규칙이 없어 상하좌우중간에 모두 붙일 수 있으니
모음 규칙성이 강하게 나타난 인도브라미한글 보다 앞 선 문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한글은 필법이 단정할 수 밖에 없는 "도형과 점선 모음"이
주 구성요소 이기에
은갑골문에서 발전된 한자의 단정한 예서와 해서의 필법에 영향을
주었음이 명확하다 하겠습니다.
이 고대한글에 관한 문서를 본 조선중기 조선 왕들이 문서 수거령을 내려
세종대왕의 업적을 높이려 했을 것이고,
조선 후기의 학자들은
이미 훈민정음에 있는 한글 규칙을 따라 공부하신 분들이시기에
고대한글 문자를 해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명확하니 한치윤 조부님은
"자음모음돈" 이라 하신 것이고,
이종휘 조부님은 예서와 해서체가 쓰인
"해나라태양국조선통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집현전 학자 조부님들은
해독하신 문자들을 그 표본이 되고
중심되는 낱말을 훈민정음에 담아
혹시나 하며
여러 가지 미래의 사태에 대비해서 단서들을
숨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이고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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