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가 증언하는 기자조선

2008. 2. 18. 16:06한민족고대사

삼국지가 증언하는 기자조선

 

최근 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을 아예 부정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다음을 보면,

삼국지와 한단고기가 기자조선을 증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55쪽

박선미님,기원전 3-2세기 고조선 문화와 명도전 유적, 서울시립대학교 석사논문

 

 

진이 천하를 통일한 뒤 1) 에 “蒙염” 을 시켜서 장성을 쌓게 하여 요동까지 이르렀다.

이 때에 조선왕 否 2) 가 즉위하였는데 진(秦)의 습격을 두려워하여 진에

복속하였지만 조회에는 나가지 않았다.3)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즉위4)하였다.

그후 20여 년이 지나 진승(陳勝), 항우(項羽)가 기병하여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제,조(趙)의 백성들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점차 준에게 망명 5) 하므로 준은 이들을

서방(西方)에 거주하게 하였다.

 

삼국지, 권 30, 오환선비동이열전(烏丸鮮卑東夷列傳) 한전소인(韓傳所引) 위략(魏略)

 

1) 진시황의 재위 연도는 기원전 247-210년(38년간)이다.

 

2) 한단고기와 청주 한씨 세계표에는 기비(箕丕)로 되어 있으므로

기비가 옳고 부(否)는 틀렸다.

한단고기는 기비의 등극을 기원전 232년으로 본다.

 

3)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조차 만만히 할 수 없는 국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4) 기준 단군의 등극 연도는 기원전 221년이다.

 

5) 이 글은 기자조선의 기준 단군 시절에 얼마나 풍요롭고 안정적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때 위만이 무리 천여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오랑캐(동이)의 복장을 하고

기자조선에 건너온다.

 

결론) 기자조선은 기자가 번조선에 건너와 바로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기자 이후 계속 중국 세력과 전투하며 승리하고, 상업으로 기씨 가문의

역량를 키워 조선족의 신뢰를 바탕으로 기후에 이르러 번조선 단군이 된 것이다.

 

기자 망명정부가 조선족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라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한단고기, 삼국지, 청주 한씨 족보에 따르면

번조선 단군이 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전의 반도사관에서 말하고 있는 한반도 안의 기자조선이 아님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