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나라는 인류 역사에서 기원전 313년 없음

2008. 2. 17. 17:20한민족고대사

연나라는 인류 역사에서 기원전 313년

1년 간 아예 이름이 없었다.

 

중국 역대 정권 정보표, 창해, 김영수 엮음, 26쪽

 

연(燕) , 전국시대

대수

존호

이름

친속

재위기간

비고

1

역왕

333-321(13)

2

연왕

희쾌

부 역왕

321-316(6)

피살(314)

3

(연왕)

자지

316-314(3)

피살

                                   망국 1년(기원전 313년)

4

소왕

희평

부 희쾌

312-279(34)

 

중국의 연나라 소왕은

고조선을 침략해 고조선 땅을 1천리-2천리 빼앗았다고 합니다.

 

연대표를 잘 보십시오.

 

연소왕의 아버지는 피살 되었고, 그 다음 왕은 "자지"입니다.

 

성이 자씨인 집안은 어디 입니까?

기자조선 가문입니다.

 

이 자지라는 분이 연소왕에게 피살 되고, 아예 연나라 1년 동안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이런 나라에서

명도전을 발행했다니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입니까?

 

 

 

한단고기 , 226쪽

 

임오년에 연나라 사람 배도가 쳐들어.... 또 험독에서도 노략질을 하니 수유의

사람 기후가 자식과 제자들 5000인을 데리고 와 싸움을 도왔다.

 

이에 군세가 떨치기 시작하더니 곧 진,번 2한 병력과 함께 협력하여 이를 대파

하고, 또 한쪽으로 군사를 나누어 파견하여 계성의 남쪽에서도 싸우려하니,

연나라가 두려워하며 사신을 보내 사과하매 대신과 자제를 인질로 삼았다.

 

이 전투에서

연나라 2대왕 희쾌가 조선군에 의해 살해되었고,

연나라 통치는 기자조선의 종실 사람 중에 "자지(성이 자, 이름은 지)"

가 3대 연나라 왕이 되고,

연소왕이 즉위하기 전까지 국호조차 1년 동안 사라집니다.

 

번조선에 인질로간 "진개"가 연나라로 돌아와

번조선을 치게 됩니다.

 

 

 

중국 기록

김종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교 연구, 문학박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사 전공, 2005년 12월

65쪽

 

 

염철론(鹽鐵論)

대부(大夫: 어사대부 桑弘羊)가 말하기를 지나 간지 오래된 옛날에ㅔ는 사방의 이종족들이 모두 다 강성하였다.

 

그래서 모두가 쳐들어 와서는 잔인하고 참혹하게 약탈하곤 하였다.

조선은 연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성채를 넘어서 연나라의 동쪽 땅들을 빼앗았다.

 

이 기록은 서기 429년에 기록된 위략(魏略)보다 더 오래전 기록입니다.

 

네이버 두산 백과사전)

 

염철론

중국 전한(前漢)의 선제(宣帝:재위 BC 74~BC 49) 때에 환관(桓寬)이 편찬한 책

 

 

12권 60장(章). BC 81년 전한의 조정에서 열렸던 회의의 토론내용을 재현(再現)하는 형태로 정리한 독특한 형식으로 엮었다. 무제(武帝) 때부터 비롯된 소금 ·철 ·술 등의 전매(專賣) 및 균수(均輸) ·평준(平準) 등 일련의 재정정책을 무제가 죽은 뒤에도 존속시킬 것인가의 여부를 전국에서 추천을 받고 참석한 자들 간에 논의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다. 참석자 중 오경교수(五經敎授)인 현량(賢良) ·문학(文學) 약 60명은 유가사상(儒家思想)을 근거로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고, 고급관리인 승상(丞相) 차천추(車千秋) 및 어사대부(御史大夫) 상홍양(桑弘羊)과 그 부하 관리들은 법가사상(法家思想)을 내세워 제도의 존속을 주장하여 이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 책은 염철전매 등의 존속 여부에 관한 것만 아니라,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 ·사상 등에 관해서도 논급되어 있는 기본적 사료(史料)이다.

 

 

#  이게 진실된 국사이자 세계사입니다.

 

상대방의 나라의 왕을 살해하고, 그 왕 자리까지 조선에서 차지 했고(좀 더 연구해봐야 하겠지만),  

이 혼란 시기동안 아예 국가도 없는 나라에서 명도전 화폐를 발행하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완전한 적대국인 고조선에 말입니다.

 

얼마나 어이가 없습니까?

 

 

지금 보니

연나라 2대왕 희쾌는 폐위 된 뒤, 바로 피살이 아니라는 점이 한단고기 기록 그대로이군요.

 

정말 놀라운 한단고기 역사서 입니다.

 

중국은 후대에 이 전투를 조선대 연나라라 하지 않고,

제나라 와의 전투라 왜곡했으며,

자지(성은 자, 이름은 지) 조차 간신이라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이는 은나라 왕실의 성이 자(子)씨이고, 기자(箕子)의 원래 성이

자(子)씨임을 몰랐던 무지에 의해 왜곡이 지속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