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6. 15:51ㆍ고조선화폐(명도전)
1. 홍산 문화 말기에 지반 수직 지진으로 요하가 상승하여 물이 고갈되고 전염병이 퍼져 홍산인들이 이주를 시작합니다.
이 때부터 1차 이주라 칭하겠습니다.
BC 3500~3000년 경
https://www.youtube.com/watch?v=QFsQoY32n5g
BC 2500년경 북경은 바다 혹은 바닷가였고, 황하 중부도 크다란 호수였습니다. (반드시 중원 동부 해안선을 시기별로 확인해야합니다)
참고:
[옴니버스 한국사] 제1장. 홍산인 중원으로 내려가다. (2)/ Hongshan men moved to Zhongyuan (Henan).
2. 그러니 당시 우리 선조들은 태행산 우측은 호수였으니 좌측의 평지를 이용해서 즉 지금의 산서 대현, 태원을 중심으로 해서 중원 중심부(임분시 도사 유적)까지 내려가는데, 그 일단의 지도자가 바로 '순임금'이십니다. 태행산 우측 호수가에도 많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3. BC 1920 년에는 큰 홍수가 나서 당시 황하 남부 지역이 대부분 물에 잠기고 산동만 남게 됩니다.
-얼마 동안 지속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상당기간 사람이 당연히 살 수 없었습니다.-
4. 요하문명의 시련은 홍산문화에만 닥쳐 온것이 아니라 다시 터전을 잡은 하가점 하층문화 (BC 2300~1600년전)에도 닥쳐와 BC1600년경 중원으로 남하를 합니다.
다시 해안선 확인해야 합니다.
BC 2000~BC1000년전에는 대체로 북경, 이현, 보정이 해안가가 되는 지도가 나타납니다.
2차 이주
BC 1600년전에는 지금의 하북의 중부에도 땅이 생겨 여기로 내려가는데,
https://blog.daum.net/daesabu/18328622?category=2216052
* 위 지도에 해안선이 빠졌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 나타난 문화가 복기대 교수님의 대이두 문화(BC22C ~BC14 C) 입니다. 대이두 문화를 역사에 대입하면, '고죽국'이 되고 이 고죽국은 중원에서 상족이 하나라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배후 지원을 합니다.
상나라: 기원전 BC 1600~BC1046
5. 3차 이주 : 기원전 1000년 경, 백두산 폭발과 한랭 기후로 다시 중원으로 내려갑니다.
이 때 상나라는 동이족과 동부 전선에서 전쟁을 하게 되고 서부 지역의 소국 주나라가 상나라를 점령하여 '서주 시대'가 개막되는 것입니다.
분봉 되기전, 주의 제후국들이 우리 동이고조선 영토를 비집고 들어오기 전입니다.
기자 조선: 산서 남부에 있었다.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89640
저는 기자조선이 산서 남부에 있다가 하북 중부(선우 중산), 북경 동쪽(고죽국)으로 이주했다 정도가 좋은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런 후 우리 동이고조선 영토에 주의 제후국, 연, 제, 노 가 고조선 계국, 래국, 엄국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게 됩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328615
산서의 기(箕) 지역에 기자가 분봉을 받는데, 이 지역이 고대 한민족(적족)이 살던 곳이라 '기자조선'이라 합니다. 현 역사학계에서 한반도에 기자조선이 있니 없니 하는 수준-극히 일부는 산서에 있었다 하기도 합니다-이니 광대한 한민족의 뿌리를 알 수 없는 것이고, 고고학 자료들도 최근 민족역사학자들 중심으로 연구가 된 것입니다.
箕족이 산서의 '기자선우국'의 정권에서 밀려난 후, 동진하여 일부는 동북의 고죽국 근처로, 일부는 황하 중부에 터를 잡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참고로 신용하 교수님은 '기자국'을 산동에 있었다라고 추정하십니다.
6. 이 지도 보면,
https://zh.wikipedia.org/wiki/%E6%BD%9E%E6%B0%8F#/media/File:春秋诸侯国分布图(简体).png
태행산을 중심으로 중원까지 쭉 이어진 적적(赤狄)의 갑씨(甲氏)까지가 1차 홍산인들 즉 배달환웅족 후손이고,
2, 3차 고조선인(하가점 하층) 이주는 백적(白狄)이라 하는 것으로 태행산 동부 황하 북쪽 하북성 중부에 위치했던 것입니다.
지도를 자세히 보면, 산서 구유국 아래 비(肥)가 있으니, 이 국가가 조선상고사에 산서의 '비이(卑耳)'라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러니 동맹국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위 지도에 보면 황하 2개의 물줄기가 발해로 흘러가고 그 사이에 국가가 없는 것은 해안선이 너무 밖으로 그려있기 때문입니다. chinese coastline BC 700년을 보면 당시 황하 하류가 거의 바다 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설령 땅이었다해도 당장 이주해서 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7. 연나라 (기원전 1100년 무렵부터 기원전 222년): 처음 주나라에 분봉된 후 북경으로 바로 올라오지도 못했다. 주나라 근처의 연이 있어 구별하기 위해 북연이라 했고, 주 성왕(주나라 2대왕) 때 '유리하'에 도읍하였다. 초기 기록은 부실하다.
8. 산서의 적적은 바로 전국 시대까지 고유국으로 남고, 백적은 선우중산, 비국, 고국(단국)으로 남게 되고, 장적은 제나라 노나라 위나라 사이에 위치합니다.
수정) 백적의 비국이라 하나, 적적의 비국이라 해야 좀 더 전쟁 상황에 맞다 싶습니다. 어느 쪽에 있던 큰 문제는 안 됩니다.
초기 연나라는 유리하와 역현의 해안선을 따라 조그만 소국이었다.(이도 여러가지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9. 유리하에 기원전 1000년 경 올라온 북연(연나라)를 BC 653(혹은 BC654) 에 산융(무종/고조선의 번한)과 선우중산(기자 세력)이 정벌하니 연은 남쪽으로 밀려 연하도 용성에 내려가고 혹은 연 영토가 병합된 후, 이에 제 환공이 연을 구하기 위해 출병하게 된다.
10. 출병 후 연을 구제했다고 하니 BC 653 년에는 연나라가 원래 북경 주변 정도까지는 회복했을 것입니다.
11. BC 550~BC457 : 기자 선우 세력이 다시 연을 공격해서 연을 거의 멸하고 중산의 기초를 닦은 시기입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328641?category=2216052
중국을 말한다/ 원시시대. 하. 상/ 신원문화사
중국 상고 문화 유적지 일람, 284쪽
영수성과 중산국 왕릉, 위치: 하북성 석가장 평산현 삼급향, 기원전 770년~기원전 200년
12. BC 400~300년 전까지도 중원 동이 고조선 세력이 주변 중원 세력을 압도하거나 동등했지만, 이런 자료는 다 빠지고-가장 대표적으로 중산국-만든 춘추 전국 지도입니다. 초기 춘추 시기는 소국들이 난립한 시기인데, 이런 자료도 잘 안 보여줍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328638
13. 이후 는 역사서에 나오는 전국 시대가 펼쳐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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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신용하 교수님, 우실하 교수님, 복기대 교수님 등과 민족 사학자 분들의 견해와 제 공부를 종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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