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3. 13:30ㆍ고조선화폐(명도전)
하지만 기원전 314년 제(齊)가 연(燕)을 공격하자, 동맹을 깨고 연(燕)의 북부를 침공해 10여개의 성을 빼앗으며 영토를 넓혔다. 전성기 때 중산국(中山國)의 영토는 지금의 허베이성 중부의 스자좡[石家莊]을 중심으로 바오딩[保定]의 남부, 싱타이[邢臺]의 북부와 헝수이[衡水] 서부 일대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남북으로 약 200km, 동서로 약 150km에 이르렀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산국 [中山國]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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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서 연의 북부 10여개의 성이란, 우리가 현재 보는 방향이 아니라, 연의 수도에서 룡성이나 이현을 북으로 보는 방향입니다.
물론 태행산을 돌아 올라가서 다시 북경을 쳤다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좀 무리가 있는 것입니다.
https://kknews.cc/history/rpj2q2n.html
즉 지도상에서는 연나라의 남쪽으로 이현, 룡성 등의 성을 말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2. 그 이전 시기의 다른 자료입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328593
公元前459年至457年間,"荀瑤伐中山,取窮魚之丘"(在今河北易縣境內)。
原文網址:https://kknews.cc/history/6onpp93.html
그러니 기원전 459~457년전 진(晉)나라에 침략 당할 때 '이현/역현' 이 중산국 강역에 있었던 것입니다.
중산국은 형국과 위국을 점령하고, 장적이라 말하는 일단의 세력은 제,노 의 사이까지 점령합니다.
# 고대 한민족 고조선 계열의 '선우중산국/기자조선국'이 중원에 떡 하니 오랜 시간 버티고 있었다니 놀랍지예.
그리고 기자조선은 연나라 오른쪽 고죽국이나 그 근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선우국 그 자체나 선우국 옆에 있었습니다.
산서 채원과 태곡에서 중원 하북 중부로 옮겨 온 후 중원 세력과 경쟁하고,
산서의 기자조선 세력은
전국시대까지 구유국으로 남게 됩니다.
산서의 구유국이 조나라에 망하고, 나중에 조나라에 중산국이 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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