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찹한 내용 그러나 여러가지 고찰 거리들

2022. 1. 16. 17:45언어와 유전자학

韓國式銅戈의 登場背景과 辛庄頭 30號墓*
趙鎭先**

신정두 -동과.pdf
2.61MB

논문을 보다가 4쪽에 중원식동과 C 형 분포권 지도를 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객관적인 자료 확보를 위해 적어둡니다.

 

신장두, 연하도, 동과, 한국식 꺾창

 

다행이 5쪽에 '남산근 101호' 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이는 하가점 상층의 고조선문화라고 봅니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9A%94%EB%A0%B9%EB%82%A8%EC%82%B0%EA%B7%BC%EC%9C%A0%EC%A0%81&ridx=0 

 

요령남산근유적(遼寧南山根遺蹟)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요서지방 청동기문화의 담당주민과 그 성격을 중국학계에서는 동호(東胡) 또는 산융(山戎)이라 보고, 북한 학계와 일부 남한학계는 예맥(濊貊)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요서지방의 청동기문화를

encykorea.aks.ac.kr

요서지방 청동기문화의 담당주민과 그 성격을 중국학계에서는 동호(東胡) 또는 산융(山戎)이라 보고, 북한 학계와 일부 남한학계는 예맥(濊貊)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요서지방의 청동기문화를 하가점상층문화라 통칭하면서, 그 문화의 성격과 주민을 일괄적으로 해명하고자 함은 타당성이 희박하다. 즉 요서의 청동기문화는 노로아호산 이북의 남산근문화와 그 이남 대릉하유역의 십이대영자문화(十二臺營子文化)로 나누어진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남산근문화(南山根文化)는 북방계, 십이대영자문화는 요동의 비파형동검문화(琵琶形銅劍文化)와 연계된 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요령남산근유적(遼寧南山根遺蹟))]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sk.d_0002_0200_0020_0030#self 

 

동북아역사넷

영성 남산근 유적Ⅱ(寧城 南山根 遺蹟Ⅱ)

contents.nahf.or.kr

* 북방계, 중원계, 요령계 등 다양한 계통의 청동유물이 다수 출토됨.
* 북방계나 하가점상층문화 전형 유물로는 공병식동검, 비수식동검, 청동투구, 청동방패, 삼익동촉, 치병동도, 수수동도, 장방형동부, 동함, 동표, 청동고삐걸개(銅掛繮鉤), 동두, 동정, 동력, 동쌍련합(銅雙聯盒), 동물형장식품 등이 확인됨.
* 중원계 유물로는 동과, 동모 등의 청동무기류, 동정, 동궤 등의 청동예기류가 확인됨.
* 요령계 유물로는 별주식(別鑄式)의 비파형동검과 합주식(合鑄式)의 곡인형동검(陰陽劍)이 확인됨.
* 이외에도 금제반지 등의 금제품, 골촉, 복골 등의 골각기와 석부, 지석 등의 석기류가 소량 출토됨.

 

이렇게 중원계 '동과'가 나온다고 해서 무덤 주인이 연나라 사람이라 보지 않고 오히려 비파형동검 표지 유물 무덤이라 보는 곳입니다.

그래서 위 趙鎭先님 논문과 달리 BC 8~6 전 우리 고조선식 고형이거나 연나라 정벌 후 획득한 전리품으로 추정해 보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시간 역사 고찰과 다른 유물들과의 관련성 등 깊은 공부가 필요한 자료입니다.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03_0020_0010_0030_0020 

 

우리역사넷

(2) 청동유물의 지역적 특성 가. 비파형동검 시기  지금까지 琵琶形銅劍時期에 청동유물이 종류가 가장 많고 다양하게 발견된 지역은 요하유역이다. 그 중에서도 대릉하유역을 중심으로 한 요

contents.history.go.kr

요서지방의 비파형동검 관계 유물군으로 십이대영자유형에 비견되는 것으로는 寧城縣 南山根 101호 무덤으로 대표되는 南山根類型이 있다.0075) 이 유형은 서쪽으로 난하, 북쪽으로 요하 상류의 영금하, 동쪽으로 대릉하에 걸치는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남산근유형의 가장 큰 특징은 비파형동검과 함께 북방계의 오르도스식동검이 공반된다는 점이다. 이 동검은 비파형동검과 달리 검몸과 검자루를 함께 붙여 만들고 검몸이 휘이거나 검자루에 동물장식을 한 것이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 유형에는 북방 시베리아에 많이 보이는 짐승을 형상한 장식의 청동기가 많다. 한편으로 中原系 靑銅器도 공반되기도 하는데, 중국식꺾창과 饕餮무늬 용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요서지방의 북서부에 치우쳐 분포한 남산근유형은 요동지방의 청동유물군과 달리, 인접지역의 북방계와 중원계의 청동기가 공반되는 지역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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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4쪽에서 본 중국식 동과의 진출을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마른 되었다는 것입니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중국식 동과가 나온 것은 연나라의 진출이 아니라 고조선의 전리품일 가능성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8쪽에 우도구(于道溝) 90M1 호 출토 청동기 자료에는 정말 놀랍게도 비파형동검 옆에 중원식동검, 요령식 동과 옆에 중원식 동과가 놓여 있습니다.

 

 

 

이게 무슨일 일까요?

즉 중원식 동검과 동과는 전리품이 아닐까요?

연나라 사람이 우리 한국 비파형 동검과 동과를 획득 후 부장했을까요?

저는 우리 고조선 선조가 연 정벌 후 획득한 부장품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6쪽의  중국에 유리한 절대 연나라 燕王職戈 는 어찌된 것일까요?

중원식동과 C형은 A․B형 동과의 분포권을 넘어 철령-백두산-평양을 잇는 넓은 지역에
서 확인되고 있다. C형에 속하는 北標 東官營子의 燕王職戈는 서기전 313~312년으로 추정
하는 견해가 있지만(張震澤 1973) 職이 燕昭王(B.C.311~B.C.279)의 왕명일 가능성이 크므로
(石永士 1983) 서기전 3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普蘭店 後元臺의 啓封戈는 魏 襄王
21년(B.C.298)(王珍仁 1979), 또는 安釐王 21년(B.C.256)(靳楓毅 1982․1983)으로 추정되지만
공반유물로 보아 매장연대는 전한 초기보다 늦을 수도 있다(許明綱․于臨祥 1980). 寬甸 雙
山子 元年丞相戈는 秦二世元年(B.C.209)으로 추정되며(許玉林․王連春 1983), 평양 석암리
秦戈는 진시황 25년(B.C.222)으로 보고 있다(李健茂 2003)

 

이는 어떤 왕인지 특정되지 않았으니, 우리 측에서는 '전리품'일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만약 연나라 왕의 동과가 맞다면, 부장품들도 왕급에 걸맞는 정도 나와야 상식인데 고찰해 봐야 합니다.

 

 

연하도 이현이란 수도가 엄연히 있는데, 연의 왕을 여기에 묻고 그 동과를 부장했을까요?

만약 왕이 죽었다면, 상식적으로 수도까지 그 주검을 수도로 가져와야 하지 않을까요?

 

 

즉 여기서 王職이란 성이 王이고 이름이 職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연은 匽이고 王職 이란 여러 동과에 사용되었으니, 왕의 소속 부대 정도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 영토를 넓혔을 때가 진개의 동진-이도 아닐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이라 보는게 대다수 시각인데, 연왕이 진개랑 같이 전투에 참가 했을까요? 주변의 진나라, 제나라가 호시탐탐 수도를 노리고 있는데, 동쪽으로 정벌하러 나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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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에 요녕식 동과에서 한국식 동과로 오는 과정은 절대적으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녕식 동과가 가장 고식-제가 보기에, 위 논문 내용과 다릅니다.-인데 중국식 동과로의 변화도 가능하다고 보면, 중국식 동과의 A, B, C 형도 우리 동과 변화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니 다시 살펴볼 여기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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