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빈의 동이열전에서 발견한 자료

2022. 1. 12. 07:37언어와 유전자학

http://db.cyberseodang.or.kr/front/sabuList/BookMain.do?mId=m01&bnCode=jti_5a0701&titleId=C9 

 

동양고전 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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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連과 대련大連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說이 있다.
약 2,300년 전,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먼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이를 동이東夷라 한다. 그 나라에 단군檀君이라는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니 아홉 개 부족 구이九夷가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모셨다.
일찍이 그 나라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에 통한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의 황제黃帝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생활 방법을 가르쳤다. 순舜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다음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사람 노릇 하는 윤리와 도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소련小連과 대련大連 형제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더니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3년을 슬퍼했는데 이들은 동이족東夷族의 후예였다.

또 <前檀君朝鮮〉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2년 봄 1월에 대련大連으로써 섭사직攝司職을 삼고, 소련小連으로써 사도司徒를 삼았다. (진단기震檀紀에 대련大連의 지방地方은 반도半島라 했다.) 대련大連과 소련小連은 단조檀朝의 중신重臣이다. 충효忠孝를 갖춘 사람으로 친상親喪을 당하니 3개월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3년 동안 서러워하니, 이것은 동양윤리東洋倫理의 원조元祖이다.

 

위 전조선단군의 주=단기고사:

발해의 시조 고왕(대조영)의 동생인 대야발이 719년(무왕 1)에 썼다고 전해진다. 본래는 발해문으로 쓰여졌는데, 약 300년 뒤 황조복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1905년 鄭海珀이 한문본을 국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전한다. 구성은 서문, 제1편 전단군조선, 제2편 후단군조선, 제3편 기자조선으로 되어 있고 李庚稙과 申采浩의 重刊序가 붙어 있다. 최초의 《단기고사》가 전하지 않으므로 현존하는 것이 최초의 것과 같은지는 의심스럽지만 다른 상고사서와 비교할 때 기본 틀은 비슷하다

 

실수....>>

해설 부분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정확합니다.

孔斌, 東夷列傳 치시면 나옵니다.

 

발견 자료 1=

자부선인(고대 한국인)--->황제가 글을 받았다.

(동이족) 순임금이 중국에 왔다.

 

# 발견 사실 =환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와 같은 우리 시각의 역사서가 아닌 공자의 후손이 쓴 책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고대 중국인조차 우리가 단군의 후예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공빈이 살았던 시절에 고조선은 위나라에 사절단도 보내고, 공빈 주장으로 고대 한국인과 중원인들은 서로 교류하고 살았다 한다. 노나라 공자와 위나라 사람들의 이상국가인 강대국이었다.

 

해설 부분에.....

다음 '글'이다. 보통 부적의 시초를 황제라고 보니, 황제가 배운 글의 원조는 고대 한국인 '자부선인'이다.

그리고 글을 배울 정도라면, 말도 서로 통해야 하니 고대 한국과 중국은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42999&cid=62066&categoryId=62066 

 

중국 역사상 전설 속의 제왕. [ 1. 기록에 나타난 순] 중국 역사상 전설 속의 제왕인 순은 우제(虞帝)라 부르고, 성을 요(姚) 또는 우씨(虞氏)라 했으며, 『초사(楚辭)』 「이소(離騷)」 편에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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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의 토대도 순임금께서 마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하문명 홍산문명인 동이족들이

자연재해 혹은 돌림병(복기대 교수님 주장)으로 황하까지 내려간 대표적 인물이 '순임금'입니다.

 

이 순임금을 대표로 하는 동이족은 산동으로 내려온 동이족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왠냐하면, 산동의 용산문화를 이어 받은 것이 하나라의 이리두 문화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반파 유적이나 아라가야 함안에서 나온 도부호가 거의 같은 이유도 충분히 설명됩니다.

 

한때 산동에서 같은 문화를 가졌던 고대 한국인/동이 족이 중원으로 간 흔적이 반파 도자기 부호이고, 한반도로 내려온 것이 아라가야의 도자기 부호입니다.

 

의미는 부적문자로 같은 것으로 이는 빗살무늬의 간략화이기도 합니다.

吉한 무늬로 복을 구하는 부호입니다. 나중에 중원 도자기에는 차츰 사물들이 추가 되는데, 처음에는 자연을 숭상했으니, 자연을 상징하는 부호들이 먼저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