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 동이, 단군에 대한 영조의 생각

2022. 1. 12. 07:03언어와 유전자학

https://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U0_A05_07B_06A_00210&solrQ=query%E2%80%A0%E6%9D%B1%E5%A4%B7$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ST_AA$solr_toalCount%E2%80%A08$solr_curPos%E2%80%A01$solr_solrId%E2%80%A0BD_ITKC_ST_U0_A05_07B_06A_00210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

상이 이르기를,

“공자께서 구이(九夷)에 살고자 하셨는데, 구이가 아마 단군의 후예가 아니겠는가?”
하니, 윤광익이 아뢰기를,
“구이가 동이(東夷)이고, 바로 단군의 후예입니다.”
 
-------------------------------------------------------------------------------------
 
현재 우리는 과거 우리를 달리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 만이 아니라 조선 시대 왕도 우리를 '구이' 이고, '단군의 후예' 로 생각하였습니다.
 
다음 '한치윤' 학자의 생각
 
한국고전종합 DB 중에서
 
1. 동이총기(東夷總記, 권1) : 한치윤은 단군조선에 앞서 동이총기를 수록함으로써, 우리 문화의 뿌리가 크게 동이문화권(東夷文化圈)에 속하고, 우리 문화가 군자국(君子國)으로 불릴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는 것을 과시하였는데, 이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이래로 이어진 단군조선을 국사의 시발로 설정하는 관례를 깨뜨린 것이다. 한치윤은 유교 문화(儒敎文化)를 숭상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이(夷)의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 문화의 뿌리를 동이 문화와 연결시킴으로써 그 이해의 폭을 넓힌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

 

격몽요결의 동이

http://db.cyberseodang.or.kr/front/sabuList/BookMain.do?mId=m01&bnCode=jti_5a0701&titleId=C9 

 

동양고전 종합DB

동양고전 종합DB

db.cyberseodang.or.kr

小連과 대련大連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說이 있다.
약 2,300년 전, 공자孔子의 7대손 공빈孔斌이 고대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먼 옛날부터 동쪽에 나라가 있는데 이를 동이東夷라 한다. 그 나라에 단군檀君이라는 훌륭한 사람이 태어나니 아홉 개 부족 구이九夷가 그를 받들어 임금으로 모셨다.
일찍이 그 나라에 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는 도에 통한 학자가 있었는데, 중국의 황제黃帝가 글을 배우고 내황문內皇文을 받아 가지고 돌아와 염제炎帝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생활 방법을 가르쳤다. 순舜이 중국에 와서 요堯임금의 다음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사람 노릇 하는 윤리와 도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소련小連과 대련大連 형제가 부모에게 극진히 효도하더니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3년을 슬퍼했는데 이들은 동이족東夷族의 후예였다.

또 <前檀君朝鮮〉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2년 봄 1월에 대련大連으로써 섭사직攝司職을 삼고, 소련小連으로써 사도司徒를 삼았다. (진단기震檀紀에 대련大連의 지방地方은 반도半島라 했다.) 대련大連과 소련小連은 단조檀朝의 중신重臣이다. 충효忠孝를 갖춘 사람으로 친상親喪을 당하니 3개월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3년 동안 서러워하니, 이것은 동양윤리東洋倫理의 원조元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