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고찰 (한자어 유입 자료)

2021. 2. 22. 07:03언어와 유전자학

  • ≪후한서≫에 이르기를 “진한의 늙은이들이 말하기를 ‘진에서 망명한 이들이 한국에 오니 마한이 동쪽의 땅을 떼어서 그들에게 주고 서로 부르기를 「도」라 하였고, 진나라 말과 가까운 까닭으로 진한이라고도 했다.’ 하였다. 12의 소국이 있어 각각 만호나 되었는데 나라라고 일컬었다.” 하였다. ; 後漢書云 辰韓耆老自言 秦之亡人 來適韓國 而馬韓割東界地以與之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十二小國 各萬戶 稱國 [삼국유사 권제1, 10장 뒤쪽, 기이 2 진한]

    [네이버 지식백과] 진한 [辰韓]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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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韓은 그 노인들이 스스로 말하되, 秦나라에서 亡命한 사람(秦之亡人) 中國에서 內亂 등으로 소요가 심할 때 많은 피난민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곤 하였다. 辰韓 지역에도 秦의 亡人들이 들어왔을 수도 있으나 辰과 秦의 音이 유사하므로 實體보다 과장이 있을 수도 있다.
≪參考文獻≫
任昌淳,「辰韓位置考」『史學硏究』6, 1959.
千寬宇,「三韓의 國家形成」『韓國學報』3. 1976.
稻葉岩吉,「秦長城東端及王儉城考」『史學雜誌』24編 3號, 1910.

 

 

한국사 데이트 베이스 언급 되었듯이 좀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진나라 망명 사람들입니다.

 

 

결론)

토착 진한(辰韓)민족 + 진(秦)나라 망명족 + 고조선 유민-----> 성장 해서 '신라' 건국 --->

 

500년 뒤 소호금천씨를 조상이라 주장하는 가야계를 통합 ---> 부여의 후손 나라 중 백제를 통합--> 부여의 후손 나라 중 고구려를 통합 --->고구려는 발해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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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나라 한자어가 들어오기전에 진나라 한자어가 신라 지역에 들어온 명확한 자료

(입증)

 

 

발해와 더불어 한강토(한반도)를 통일하고 유지했으니

한자어가 강력하게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