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21. 15:00ㆍ고조선 화폐문과 신석기토기무늬
1. 신석기의 집은 주로 반지하 움집 형태입니다.
현재 개념으로 보면, 반지하 생활이니 이상하고 심지어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아열대 기후라고 추리해보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반지하 구조의 집을가졌다는 것은 자연 환경을 잘 활용한 지혜를 발휘하신 것입니다.
2. 구석기 부터 공동체 생활을 -
물론 농경사회가 본격 시작되면서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농경에 대해 서로 의견 교환을 하는 부족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구석기에 창과 활을 들고서도 코까리와 사자를 잡을 려고 하면 혼자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공동체 생활을 한 것이고, 또한 우리 터전에서 석기 제작을 한 석기제작소 형태가 나왔으니 이는 마을 단위의 구조가 이미 있었다고 보아도 됩니다. 심지어 사냥 나간 남자들은 석기 제작하는 남자들보다 좀 더 잘 대우 받았을 가능성도 많습니다.
3. 구석기와 신석기의 구분점
타제석기에서 마제석기로의 변화를 신석기라 하고, 그 중심에 토기를 두기도 합니다. 한국 대륙 내부 강가에 주로 모여 살든 구석기인들이 신석기에는 바닷가로 모두 나간 것은 바로 어업을 본격적으로 한 '배'의 발명 때문이었습니다. 울주 고래잡이에서 보듯, 어업을 여러 사람이 해야 했으니, 어촌이 거의 지금 처럼 바닷가에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를 우리는 우리 역사서에서 '배달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동삼동에서 만든 조개 장신구는 유구국의 흑요석과 교환되었는데 이에 조개가 화폐의 역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시기에는 조개 모습의 조그만 화폐를 만들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이 환단고기의 '원공패전' 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실물도 현재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역사스페셜 참조
즉
고령 천부인과 산동 토기 문양은 '하늘에서는 해달별 빛', 바다에서는 '배', 옷은 '베', 과일은 '배'를
사람의 동작은 '보다' , 한자로는 '보호/보우'와 '방어' 를 표현하는 '배달국' 표식인 것입니다.
4. 천문이란?
구석기 시대에는 남자들이 사냥을 주로 했습니다. 동물을 쫒아가다 보면 당연히 자신의 거주지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게 됩니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방향을 알아야 합니다.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항상 북쪽 그 자리에 북극성(당시는 헤라클레스 자리 아래)이 있습니다. 어로에 주로 종사한 신석기인들도 북극성이 북두칠성 국자 자리에 온 시점과 후대 용자리 투반에 온 시기에도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러면 선행한 학습을 다음 세대에 전수할려는 욕구가 생길 것이고, 이것은 현재 바위 그림의 근원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린 하늘그림은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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