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9. 08:15ㆍ고조선 화폐문과 신석기토기무늬
1. 먼저 전 세계 신석기 토기 대략 지도입니다.
모스코바 박물관 전시 점줄 무늬 팽이형 토기를 보니 너무 같아서 충격적입니다.
산동 토기 : http://blog.daum.net/daesabu/16305116
2. 문제 제기: 그러면 왜 요하와 우리 한반도 북쪽에서는 팽이형이 없고 저 유럽 쪽과 우리나라 남쪽에서 거의 같은 팽이형 토기가 나타날까요?
3. 만약 신석기를 현재 처럼 대략 만년 전후로 잡는 다면, 해수면이 이미 들어와 있으니 추리를 할 수 없습니다. 완전 현 바다가 된 것은 8천년 전입니다.
추가: 완전히 서해가 바다가 된 것이 8천년 전이니 만년전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1년에 5cm씩 증가했다고 합니다.
최근 신석기를 2만 2천년 전으로 본 견해가 있습니다. 구석기 후반과 신석기 초가 이어지는 유적지에서 나온 측정치입니다. 이 문화가 가장 이른 신석기 문화라고 본다면, 서해가 바다가 아닌 육지 상태입니다. 다시 이전 자료를 보겠습니다.
박용안 교수님 자료를 토대로 색깔은 제가 입혔습니다. 2만년전-1만 2천년전 사진입니다.
세계 최대의 강, 초원,
4. 이런 점줄과 빗살 팽이형 토기의 길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빗살무늬토기의 길이라 합니다.
유럽 쪽에서 좋은 환경을 찾아 온 사람들이 다시 고향이 그리워 돌아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서해의 해수면 증가로 당시 신석기 인들은 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 최대의 강과 엄청 넓은 초원을 가진 당시 서해 육지로 시베리아 족 사람들도 몰려 왔으니, 이 때까지는 빗살 토기 시베리아 전래설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 바위 방패신인상과 고래잡이 그림, 그리고 한국형 상형문자(저는 천문도라 봅니다), 전 세계 언어와 우리말의 일치성을 고찰하건데, 인류 시원 문화라고 하는 시점에 출발점은 우리나라와 서해, 산동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5. 팽이형으로 만든 이유는 역시 강가 생활에서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홍익희 교수님글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강가 모래를 쉽게 파서 그 안에 꽃아둔 토기였는데, 육지 사용시에는 땅을 파고 토기를 꽃아 넣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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