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5. 15. 12:46ㆍ고조선 화폐문과 신석기토기무늬
1. 한국인의 필독서
2. 위 책, 488쪽, 우실하 교수님
둘째, 많은 중국 학자들은 요하 일대에서 남하한 이들이 상나라를 세웠다고 보아왔고, 요하 일대의 주도 세력은 예, 맥 계열이라고 보아왔다. 이 예.맥 계열의 민족들은 후대의 부여. 고구려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대가 중원보다 신석기가 앞선다면 중국 문명은 요하 문명의 지류나 방계 문명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중국은 중화 문명의 기원을 요하 일대로 옮기려고 하는 것이다.,
-------------------------------------------------
우실하 교수님의 글 분석
1. 요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상나라를 세웠다. 이는 한국 학자들 주장이 아니라 중국 학자들의 주장이다.
2. 요하일대는 부여 고구려 선조인 예맥족이다. 부여 고구려가 당시에도 있었지만, 큰 차이점은 없다.
3. 상나라에서 갑골문이 나와 선진 문화국임을 증명한 중국 문화가 동이족 문화의 아류로 전락할 위기에서 동북공정이 시작되고 있다.
------------------------------------------------------
제 공부와 대비해서 2차 분석
1. 요하 문화가 한국 예맥 문화라면, 상나라의 언어와 문자의 시원도 한국에 있다. 이는 본인이 연구한 '환국대동어문'에 다 들어 있다.
2. 이것은 인류의 시원 문화를 가리는 상씨름이다.
3. 간접 증명: 인더스 문명 시작을 대략 기원전 2500년 쯤이다. 이 문명은 우리 환웅배달 문화의 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사용된 인더스 문자 보다 우리 바위 상형 문자(암각화)가 더 이른 시기라는 것을 보아 우리 바위 그림은 신석기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즉 신석기 한국 상형문자가 빗살무늬 토기와 함께 북으로 진행한 것이 요하문명이고, 바다를 건너 인더스로 간것이 인더스 문명이라고 본다. 인더스로 건너간 이유는 서해 초원의 침수라고 본다.
-------------------------------------
인더스 문명의 토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88202&cid=40942&categoryId=33421
<<토기에는 가지무늬토기와 민무늬토기가 있고, 유약을 입힌 도기도 있다. 무늬의 종류에는 원을 교차시켜서 만든 나뭇잎무늬·어린(魚鱗)무늬·격자목(格子目)무늬·빗살무늬·파상(波狀)무늬·신장형(腎臟形)무늬·보리수나 야자 등의 식물무늬, 공작무늬·어(魚)무늬 등이 있었으며, 드물지만 새끼사슴에 젖을 먹이는 암사슴과 어망으로 물고기를 잡는 남자를 그려넣은 것도 있다.>>
거의 동일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위 토기 무늬는 증명합니다.
슈메르의 초기 상형문자에도 별들이 없습니다.
별이 빠져 나간 이후 상형과 부호는 모두 우리 바위문자의 후대 문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예족에 대한 하나의 생각
북족에 존재한 예, 동예라고 하는 존재....
경상도에서는 '..........예.' 라고 표현합니다.
생각하건데
북쪽의 예는 남쪽 한(韓)의 일부가 북족으로 가면서 부족명을 '예'라 한 듯 해 보입니다. 이는 더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한자어 + 하다/한다
한자어를 만든 사람들의 신분을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고조선 화폐문과 신석기토기무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석기 토기와 청동기 민무늬 연속성 (0) | 2016.05.16 |
---|---|
빗살무늬 토기 바닥면을 통한 시기 구분 (0) | 2016.05.15 |
신전과 은 갑골문의 연결성 추론 (0) | 2016.05.15 |
신전과 부예 (0) | 2016.05.14 |
암각화 분표 지역 (0) | 2016.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