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홍수 그리고 고조선

2016. 5. 1. 06:27국명 흐 의미

바다와 홍수 그리고 고조선

 

1. 규원사화, 72쪽, 한뿌리, 북애 지음/고동영 옮김

 

산해경에 북해(北海)에 나라가 있으니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 하늘이 이들에게 물을 주어 살게하니....

 

 

<< 山海經 >> 所謂北海有國 名曰朝鮮 天毒育也其人 水居偎愛也

 

 

물론 北海有國에서 북해를 발해로 보아야 하는가는 더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발해라면, 발해 안에 원래 조선의 뿌리가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 합니다.

 

 

 제가 다시 해석해 보자면,

천독(환국)이 그 나라 사람을 길렀는데, 지금은 물이 된 곳에 거주했었고, 이는 희미한 기억이 되었다.  정도로 보아야 하고 인도를 의미하는 천독은 역시 우리 조선천독에서 분파 된 겨레 일족임을 표현한 국명입니다.

 

2. 홍수 기록

 

 

1)규원사화, 73쪽, 한뿌리, 북애 지음/고동영 옮김

 

 

나라를 다스린 지 삼십여 년에 홍수를 만나 큰 파도는 하늘에 넘쳤다. 요동과 만주는 벌판이어서 패수가 넘치고 평양이 잠겼다. 임금은 네 아들을 보내어 마땅한 땅을 두루 살피게 했다. 이에 아사달 당장(唐莊)의 들을 차지하고 살게 되었다. 현재의 문화 구월산 아래 장평(莊坪)이 바로 그 땅이다.

 

2) 한단고기, 58, 정신세계사, 임승국 번역 주해

 

정사 50년(BC2284), 홍수가 크게 나서 백성들이 쉴 수가 없었다. 제께서는 풍백인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고 높은 산과 큰 강을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였으니....

 

 

비교를 해 보겠습니다. 규원사화는 나라를 다스린지 30년 만이니, 기원전 2303 에 큰 홍수가 있었고 이것은 엄청난 규모 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한단고기는 그 뒤 BC2284라고 보고 있으나 이는 동일한 대 홍수를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엄청난 규모의 해수면 상승이 일어났고, 이는 도읍을 당장(唐莊)으로 옮기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는 기원전 4300년 경 서해안 1차 대형 해수면 상승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제가 처음에 단군 전이라고 보았지만, 규원사화와 한단고기를 보면,그 시기는 첫 단군 재위 기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마지막 환웅께서 평양으로 오신 것도 서해 안에 물이 계속 차 올랐기 때문입니다.

 

 

3. 이전 자료와 검토

 

이동주(2008)

기원전 2000년 경 해수면 상승에 대한 고고학적 검토-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중략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남해안 지역에서 확인되었던 첫번째 해수면 상승기는 발해만 일대와 동일한 4,300년 전 경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검증할 수 있으며, 2번째 해수면 상승기인 4000년 전경에서 -3500년 전 사이로 시기 폭을 좀 더 좁힐 수 있다.

 

 

 위 논문에 따르면 기원전 2292년도 경에 해수면 상승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2333년은 단군 개국 후 대략 40년 후 이니 규원사화와 한단고기 딱 중간으로 단군 재위 시절 홍수는 해수면의 상승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고 이는 2개의 역사서가 진실된 역사서라는 것입니다. 현대 자연과학으로 밝힌 해수면 상승을 짜집기해서 넣을 수 있을까요?

 

 

4. 황해도 구월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4921&cid=46617&categoryId=46617

 

 

 처음 평양 아사달에 도읍하셨는데, 단군 재위 대략 30-50년 즈음에 대홍수가 있어 규원사화 내용에 따르면, 지금 황해도 구월산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것입니다. 장당경 아사달, 당장경 아사달은 현재의 황해도라는 것입니다.

 

5. 홍수가 물러감

 

규원사화에는 그 후 10년 후, 알유의 난이 있고, 홍수를 면하게 되었다 했습니다. 부여는 더 부쪽의 우수홀, 부루에게는 임검성, 부소는 낙랑홀, 부우는 당장경을 맡기고, 고시씨는 남쪽 땅에 봉하였다. 

 

 

규원사화, 76쪽, 한뿌리, 북애 지음/고동영 옮김

 

대략 10년 간 홍수 시기가 있었고, 물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이 혼란한 틈을 이용해 알류란 사람이 반역을 일으켰다고 전합니다. 4명의 왕자에게 책임지를 맡겼습니다.

 

 

 부여의 우수홀은 북쪽으로 부여족의 출발지가 된 것입니다. 즉 단군 부루 장손나라를 다음 부여 왕자의 나라가 이어서 우리 국통을 이어가게 됩니다. 숙신홀은 부여를 지나서 숙신이 있었습니다. 낙랑도 이미 이 때 부터 존재한 우리의 땅이었습니다.

 

 

남쪽으로 갑비고차로 가서, 다음 낙랑홀에 이르렀으니, 굉장히 먼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평양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단군의 순행도를 보면 북으로 가셨다가 서로 가셨다가 남으로 가신 것이니 낙랑은 원래 요서 정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고대 낙랑은 도읍에서 굉장히 먼 곳이다.

* 평양은 아니다.

 

 

* 슈메르 문명에도 홍수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역시 이 즈음 전 세계에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홍수가 발생했다고 봅니다.

 

* 신석기 말, 청동기 시작 전 해수면이 거의 현 상태로 되었다고 봅니다. 물론 그 전은 호수 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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