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송씨 유래 - 송씨상계세보

2009. 7. 11. 19:16대한민국 가문 탐구

출처 : http://blog.daum.net/dhsong21/8746330

 

 

송씨(宋氏)는 주무왕(周武王)이 미자(微子)를 송(宋)에 봉하니 그 후손들이 나라 이름을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송씨상계세보(宋氏上系世譜)》에 의하면 우리나라 모든 송씨의 도시조는 당(唐)의 호부상서 송주은(宋柱殷)이라고 하는데,
그의 7세손인 송순공(宋舜恭)은 장자 성용(成龍), 차자 흥용(興龍), 삼자 인용(仁龍) 사자 복용(福龍)을 두었는데, 차자 흥용(興龍)의 후손은 연안송씨(延安宋氏)가 되고, 삼자 인용(仁龍)의 후손은 진천송씨(鎭川宋氏)가 되고, 사자 복용(福龍)의 후손은 홍주송씨(洪州宋氏)가 되었다.
  송순공(宋舜恭)의 장자 성용(成龍)의 차자 정열(正烈)은 신평송씨(新平宋氏)가 되었다.
성용(成龍)의 장자 흥열(興烈)은 세아들을 두었는데 장자 자영(自英), 차자 맹영(孟英), 삼자 계영(季英)이다.
차자 맹영(孟英)은 야성송씨(冶城宋氏)가 되고, 삼자인 계영(季英)은 김해송씨(金海宋氏)의 시조가 되었다.
홍열의 장자인 자영(自英)은 세아들을 두었는데 맏이 유익(惟翊), 둘째 천익(天翊), 셋째 문익(文翊)이다.
맏이 유익(惟翊)은 여산송씨(礪山宋氏), 둘째 천익(天翊)은 은진송씨(恩津宋氏), 셋째 문익(文翊)은 서산송씨(瑞山宋氏)가 되었다.
  그 중 은진송씨는 중간 세계가 실전되어 천익의 후손인 대원(大原)을 1세조로 하고 있으며, 여산송씨와는 큰집 작은집으로 통하고,
  서산송씨는 조선조에 현신교위(顯信校尉)를 지낸 이석(而碩)을 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우리나라 송씨의 본관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172본이나 전재지고 있으나 여산(礪山)·은진(恩津)·진천(鎭川)·남양(南陽)·김해(金海)·덕산(德山)·문경(聞慶)·신평(新平)·야성(冶城)·양주(楊州)·연안(延安)·용성(龍城)·철원(鐵原)·청주(淸州)·홍주(洪州) 등 20여 본관만이 현존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도 여산·은진·진천 등 세 송씨가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의 송씨는 거의가 여산이나 은진에서 분파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송씨는 도시조(都始祖) 송주은(宋柱殷)의 후손임이 분명하며 오늘날에 와서도 송씨(宋氏)끼리는 이본이라도 통혼(通婚)하지 않는것이 관습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