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西周)에서 동주(東周)로

2008. 7. 6. 18:57한민족고대사

서주(西周)에서 동주(東周)로

 

 

역사 시대에 가장 극적인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주 12대 희궁열(嬉宮涅)이 포사(褒姒)를 웃기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렸고 이를 본 봉국 제후들은 자다 말고 �아왔다.

 

유명한 양치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이면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 신국이 견융(犬戎)에게 공격을 요청했고,

견융의 공격 후

주의 수도 호경은 망하고 희궁열은 피살되었습니다.

 

 

이후

수도를 낙읍(하남성 낙양)으로 옮겼지요.

이를 동주(東周)라 합니다.

 

 

뭐 이 내용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 스스로 적은 책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주 왕조의 판도는 이제 중원지구로 한정되었다. 왕기가 줄어들었음을

말할 것도 없었다. 낙읍 주위 2만 Km 의 손바닥 만한

땅만 남게 되었다. 다시 이 좁은 땅에다 이제 서방에서는 발을

내릴 수 없는 동천을 함께한 남은 봉국들을 배치해야만 했다."

 

 

 

맨 얼굴의 중국사, 창해, 백양 지음,김영수 옮김, 239

 

 

여기서 견융(犬戎: 개 같은 오랑캐)은 중국식 표현이고,

이 견융은 우리 구이의 한 갈래인

견이(畎夷--> 畎韓)이지요.

 

 

이제 기원전 770년부터 동주가 시작되고,

혹은 춘추가 기원전 770년에 시작되는데,

영토의 위치가 어디에 있었는지 추측할 수 있겠지요.

 

 

즉 연나라의 위치가 주 건국 후의 위치와

동주 후의 춘추시대 연의 위치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연의 위치 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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