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13. 11:29ㆍ명도전 문자 연구
명도전과 기자 조선 정리
이쯤에서 역사적 내용을 정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박천님의 논문 중에
첨수도에 관한 내용입니다.
첨수도는 하북성 경내에서 안나온다는 것이고,
명도전 위에만 문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첨수도 위에도 문자가 있는데,
죽(竹), 기(箕), 어(魚), 명(明)이라고 해석하며
이를 고죽, 기, 어, 명 이라는 씨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북성 네이버 백과사전)
약칭으로 기(冀)라고도 쓴다. 성도(省都)는 스자좡[石家莊]이며, 중국의 화베이[華北] 지역에 속한다. 베이징[北京] 직할시와 톈진[天津] 직할시를 둘러싸고 있으며, 보하이만[渤海湾]에 인접해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연(燕) 나라와 조(趙) 나라 지역이었으며 한(漢) 나라와 진(晋) 나라 때에는 기주(冀州)·유주(幽州)라고 불렀다. 당(唐) 나라 초기에는 하북도(河北道), 원나라 때는 중서성(中書省), 명나라 때는 경사(京師) 지역에 속하였다. 청(淸) 나라 때부터 독립된 성을 이루었고, 1928년 현재의 명칭으로 불렀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연나라 지역에서 명도전의 전 단계인 첨수도가 안나온다는 것이고,
고죽국이라는 고조선의 지방정부에서 죽(竹)이란 국명을 새긴 첨수도를 발행했는데,
후에 은의 기자가 고죽국에 망명한 후 기(箕)라는 씨족 명을 첨수도에 새겨 발행합니다.
물론 고죽국에서 유명 씨족인 어족(魚族)은 “어”를, 명족(明族)은 “명”을 새깁니다.
또 한가지 증거 청동기 유물이 더 있습니다.
중국 요령성 객좌현에서 기후방정이 발견되어 기자가 고죽국(당시 조선의 제후국)
으로 이동했음이 청동 유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한단고기에 따르면,
기씨 가문은 연나라와의 전투에서 단군조선을 도와 전공을 세우고,
화폐를 통한 무역에 종사하여
고죽국에서 영향력을 넓혀 나갑니다.
(거의 고죽국의 지역을 장악 통치한 듯 보입니다.
이를 이전의 역사에서는 기자조선이라 부르며 모두 왕이라 칭했습니다.)
그 후
기자의 후손인 기후가 완전히 고죽국을 장악한 후, 제후가 되는데,
한단고기에서는 번조선에 단군이 된다고 봅니다.
이 시기에 명도전이 나오는데,
왜 기(箕)를 새기지 않고, 명(明: 꼭 일치하지는 않습니다.)비슷한 문양을 새겼는가는
조금 의문입니다만(제가 말씀드렸듯이 아사달의 동이족 고유 문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적인 전개를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즉
명도전의 국적 문제도 문제지만,
첨수도가 더 중요한 겁니다.
1. 명도전의 전 단계인 첨수도가 연나라 지역에서 발견 안된다.
2. 첨수도 위와 네모 솥(혹은 향로)에도 문자가 있는데,
기자와 고죽국의 존재를 확인해 준다.
이는 한단고기의 역사적 서술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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