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水사람 이두를 처음 만든 왕문
2022. 1. 25. 15:16ㆍ언어와 유전자학
환단고기에 한수사람 왕문이 이두문을 만들었고, 삼한에 모두 시행했다고 합니다.
즉 설총의 이두 이전에 고대 이두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수는 현 양쯔강 중류의 한수가 아닙니다.
중산국 '부유'의 위치를 보아, 바로 현 황하입니다.
BC 602 년에 황하는 태행 산맥을 가까이 하면서 한단을 지나고 석가장과 형수 중간을 흘러 중산국을 가로질러 흘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Xg_h9kuST0
-8분 40초-
그래서 한수란 현 황하의 고대 이름이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이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1728&cid=46674&categoryId=46674
즉 당시 고대 한국어 부여어를 적기 위한 중산국의 한자어 사용 방식이라고 추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두문'은 굉장히 난해합니다.
이를 좀 극복하고자 시도해본 문자가 '부예' 인데 신전(고대 전서체 문자)을 간략하게 만들어 본 문자입니다.
저는 명도전 위 문자라고 추정합니다.
하지만 단어 단위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했으나, 현 소리문자의 인도 제 문자나 한글과 같은 정도로 발전하지 못하고 화폐 위에만 남게 됩니다. 실용성에서 한자에 밀려나게 되고 진통일 후 한자가 표준화되면서 역사 속에 잊혀졌다가 제가 해독해서 고조선부여 문자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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