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강성기와 연나라 기록 없음

2022. 1. 14. 10:53언어와 유전자학

고조선 강성기와 연나라 기록 없음  

35세 단군 사벌, 36세 단군 매륵

가장 강성했고 영토를 일국(일본) 3도까지 평정 넓힌 BC 667년입니다.

 

BC 707 년에 조을을 보내 곧장 연나라 수도로 진격하고, 제나라군대와  임치 남쪽에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고 고하였다.

만약 이 환단고기 내용을 사실로 받아 들인다면, 연나라와 제나라는 상당부분 고조선 통치하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기에 실린  BC 653 년 환단고기는 수유(기자의 후예)의 군대와 더불어 연나라를 정벌하고, 제나라가 연나라를 도와 고죽으로 쳐들어왔고, 화친을 구하고 물러났다.

 

환단고기(안경전 역주 와 임승국 번역/주해)

 

사기 기록--------------------------------------------------------------------------

장공 27년에 산융()이 연나라을 침략하자, 제나라 환공이 연나라를 구하러 나서 북으로 산융을 정벌한 다음 돌아갔다. 연나라의 국군(장공)이 제나라 환공을 배웅하느라 국경을 넘었다. 환공은 연나라의 국군이 밟은 땅을 떼어서 연나라에게 주었다. (환공이) 연나라에게 주나라 초기처럼 천자에게 조공하도록 하고, 연나라로 하여금 소공()의 정치를 다시 따르도록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34. 연소공세가 [卷三十四. 燕召公世家] - 한글 번역문 (사기: 세가(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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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조선과 수유의 군대 이고, 사기는 산융(山戎)으로 적었습니다.

 

그로부터 65년 뒤(기원전 706년)에 산융이 연()나라를 넘어와서 제()나라를 침범하여 제나라 희공()이 제나라 교외에서 산융과 싸웠다. 그로부터 44년 후(기원전 664년)에 산융이 다시 연나라를 침공했다. 연나라는 곧 위급함을 제나라에 알렸다. 제나라 환공()은 북쪽으로 가서 산융을 공격해 그들을 패주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110. 흉노열전 [卷一百十. 匈奴列傳]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나라들은 농() 지방의 서쪽에 있었던 면저(綿), 곤융(), 적(), 원 등이었고, 기산(), 양산()과 경수(), 칠수()의 북쪽으로 의거(), 대려(), 오지(), 구연() 등의 융족이었다. 그리고 진()나라 북쪽에는 임호(), 누번() 등의 융족이 있었고, 연나라 북쪽에는 동호(), 산융() 등의 융족이 살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권110. 흉노열전 [卷一百十. 匈奴列傳] - 한글 번역문 (사기 : 열전(번역문), 2013. 5. 1., 사마천, 김영수)

 

이미 민족사학계에서 검토된 바지만, 여기서 '산융'은 고조선 후국을 말합니다.

동호와 산융은 중국에서 부르는 말이고 우리는 고조선 후국의 선조 나라를 胡나 戎으로 부르면 안되는 것이다. 편의상 '동호, 산융'이라 하는 것이다.

 

이 전쟁의 원인과 전개 사항은 조선상고사에 이미 나와 있다.

<<래국(래이)는 제나라를 이긴 동이족 나라인데, 물품 거래에 당하여 제나라가 래를 멸망시켰다. 이에 진한의 조선은 제가 조선 민족이 중국 안에 발붙이지 못함을 알고 조선 열국을 연합하여 ........>>

 

조선상고문화사(단재 신체호 원저/ 박기봉 옮김, 비봉출판사, 142~143)

즉 고조선의 열국(동도/선비족, 고죽, 영지, 무종) , 고조선의 산서의 동이족 열국 중에 '산융' 하나만 뭉텅거려 떼어

사기에 서술한 것입니다.

 

이는 정확히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전게서: 140쪽

중국사에서 말하는 산융은 곧 진한과 진한 동맹국인 고죽, 동도(선비족), 영지, 부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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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43

BC 706 년 연을 쳐서 항복을 받고 계속헤서 남으로 내려가서 제를 치니 제가 드디어 진왕에게 세공을 바치고 현제의 존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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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라가 강성해진 것도 고조선의 문물과 제도를 본받아 강성해졌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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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수도의 경우 처음에는 연나라 제작이다만 하다가 하도 말이 안되니 '또는 산융(山戎)'이라 합니다.

자 그러면 산융(山戎)은 우리 고조선의 열국을 통칭하는 말임을 아시겠지요?

 

곧 첨수도 나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일 것이다라는 추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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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흉노 열전에 연의 북쪽에 동호와 산융이 있다.

동호와 조선(혹은 조선 연합국)이 있었다로 변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제나라에서 고조선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니 이 때 우리말이 그대로 제나라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서양 문물에 따른 영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예입니다.

 

 

 

 

 

 

 

 

이렇게 가장 강성 했던 고조선의 세력에 굴복한 연나라 국력이었기에 이렇다할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