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사람 왕문이 처음으로 전서(篆書)가 복잡하다 하여 그 획수를 약간 줄여 새로 부예(符隷)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2022. 1. 6. 21:39언어와 유전자학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 상생출판, 431

 

부여 사람 왕문이 쓴 서법은 부()나 전서(篆書)와 비슷하다. (중략) 은나라의 갑골문에서 유래한 한문은 왕문이 남긴 법이다.

 

 

437

 

단군 때 '신전'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자가 백두산, 흑룡강, 청구, 구려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부여 사람 왕문이 처음으로 전서(篆書)가 복잡하다 하여 그 획수를 약간 줄여 새로 부예(符隷)를 만들어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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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도전 문자는 가림토라 해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왕문의 부예(符隷)라고 보면 더 정확할 듯 합니다.

 

'부예' 의 현대적 용어는 '상형한글'입니다.

 

왕문은 언제 사람일까요?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409

 

병신(BC 865)에 한수 사람 왕문이 이두법을 만들어 올리니 ......

 

*한수=지금의 대릉하(大陵河)

 

흔히 말하는 명도전에 새길만한 시기 앞에 태어난 부여 사람 왕문에 의해서 만들어진 부예가 명도전 글씨와 더 부합합니다. 그리고 현 갑골문의 원조는 단군 때의 '신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주장한 제 글입니다.

https://blog.daum.net/daesabu/18298809

그러면 갑골문과 고대 한자 어순은 어찌 된 것일까요?

 

1. ~이다 는 한국어 어순 그대로이다.

2. 일부 제한 적으로 '주목동'이 나타나고 대부분 '주동목' 문장이다.

여기서 '주동목'은 고대 한국에서 분파된 상족과 중원족이 결합한 상황에서 중원족의 어순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