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5. 18:19ㆍ언어와 유전자학
연나라 초기 강역이 북경까지 못 미쳤다면, 게임 종료
먼저 제가 더 밀고나가지 못한 이유는 북경 근처에 조선전(명도전)이 더 많이 발굴 되었다는 박선미님 자료(학연 문화사)
를 보고서입니다.
222쪽
<<(중략) 한편 국내 일부에서는 명도전을 고조선이 주조한 화폐로 보거나, 명도전의 분포 범위를 고조선의 강역과 연결시켜 보려는 견해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 12>와 같이 명도전은 북경과 하북성을 중심으로 하여 가장 많이 분포한다. 고식도 이 지역에 많다. 따라서 명도전이 북경과 하북성을 중심으로 유통되었고, 주변 정치체가 공동으로 명도전의 유통권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제가 남의 나라 연나라 화폐를 고조선화폐라 했나 잠시 의심을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연나라 초기 강역이 북경까지 가지 못했다면,
명도전은 모두 고조선의 돈임이 확정 됩니다.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161745255&code=210000
1. 일단 이기환 기자님의 기사를 보겠습니다.
그 중 이형구 교수님의 의견으로는 '하남성 언사(偃師)'를 말하고 있습니다.(추정)
언사가 어디 있는지 보시겠습니다.
저 아래에 있고, 북경과는 심하게 멀지요?
2. 북한 학자의 의견
www.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434
허성관(前 행정자치부 장관) 님의 글중에
<<북한학자 손량구의 연구에 의하면 고조선 지역에서 22,265개, 연나라 지역에서는 7,368개의 명도전이 출토되었다. >>
제가 직접 1차 자료는 보지 못해지만,
손량구 학자도 북경 근처를 고조선 강역이라 본 것이기에 위 숫자가 나왔다고 봅니다.
3. 리지린의 고조선연구
리지린은 구체적으로 수많은 사료와 유물을 토대로, 옛 조선은 적어도 BC12세기 이전부터 큰 세력의 국가체제를 이뤘으며, BC5세기 이래 지금의 북경을 포함한 난하 일대까지도 옛 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진개의 침략(BC300년경으로 추정), 위만의 쿠데타(BC194년), 한 유철(무제)의 침략(BC108년) 등 일련의 사태가 벌어진 뒤에야 지금의 대릉하까지 물러났음을 확인했다.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이 학설을 보면
북경을 포함한다니, 바로 명도전이 가장 많이 출토된 지역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박선미님이나 윤내현 교수님(고조선 강역을 제대로 보셨지만)이 놓친 것은
북경이 연의 수도가 된 것은 '진개'의 침략으로 인한 것이고 BC 300년 경 이전에는 고조선의 통치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명도전은 바로 고조선 화폐인 것이고
그 뒤 문자는 고조선의 '상형한글'이고, 훈민정음에 언급된 '자방 고전'의 '고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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