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에서 말하는 ‘흑수(黑水) 백산(白山)’이란?

2021. 2. 27. 05:35언어와 유전자학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흑수(黑水) 백산(白山)’이란?

 

이미 임승국(정신세계사, 16~17) 주해에 밝혔듯이 흑수는 흑룡강이고, 백산은 백두산입니다.

 

즉 환국, 배달국, 심지어 단군께서 도읍한 송화강 고조선이 모두 백두산에서 송화강을 거쳐 흑룡강에 이르는 곳이 서울이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삼국 유사에 환웅께서 오신 태백산(太伯山)은 묘향산(妙香山)이 아니라 백두산(白頭山)을 말하는 것입니다. -태백산(太伯山)의 백()은 백제(伯濟)가 되고 백제(百濟)가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고구려나 백제나 가야/가락 나 발해나 모두 '밝다, 배달'에서 나온 국호입니다.-

 

그래서 환웅 배달국은 처음에 백두산 북쪽에 신시 도읍하고 배달국을 건국했는데 청구국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국력이 강해지면서 점차 서진하여 치우천왕께서 산동으로 진출하였고, 이곳에 청구국(靑丘國)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산동 청구국은 곧 산동의 배달국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전에 검토한 중국 자료입니다.(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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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새벽, 자오춘칭, 친원성 지음/ 조영현 옮김, 98~99

 

 

 

<<동방 세력의 서진(西進)

 

 

중국의 전설시대에는 동방에는 태호씨를 선조로 하는 일단의 씨족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용맹한 치우의 인솔 하에 화하(華夏)의 맹주였던 황제와 대전을 벌였다. 그들이 대문구 문화의 주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문구 문화는 황하 하류의 세력이 강한 한 농업 부락에 분포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그 범위가 산동성 중부와 동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5백년 전부터 그 세력이 확대되어 서쪽으로 하남성 중부까지, 서남쪽으로 안휘성 북부까지, 동쪽으로 해안까지 이르렀고 북쪽의 요동 반도도 그 영향을 받았다. 대문구 문화는 앙소 문화 지역인 하남성 중부까지 곧바로 나아감으로써 강력한 서진의 형세를 드러냈다.

 

 

(본문 중략)

 

 

세차게 중원으로 밀려 들어가는 형세...

 

대문구 문화중기는 앙소 문화 후기와 대략 비슷한 시기이기 때문에 앙소문화에 속하는 유적에도 대문구 문화의 특징을 가진 도기가 출토된다. 대문구 문화 후기가 되면 심지어 하남성 언사시 경내에서도 대문구와 매우 유사한 고분이 출현한다. 이렇듯 대문구 문화가 중원으로 유입되는 현상은 예()의 동쪽 지역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동부지역의 동이(東夷)민족의 세력이 이 때 이미 중원 지역으로 세차게 뻗어 이미 나왔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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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인들 연구가 환단고기 내용을 잘 설명해줍니다.

 

대문구와 용산 문화로 이어지는 배달문화가 중원 앙소문화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동을 중심으로 후기 배달국이 중원으로 퍼져나가고

배달국 마지막 임금 단웅(檀雄)에게서 단군이 나오시고 이분이 다시 송화강 백두산 아래 도읍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blog.daum.net/daesabu/18325142

다시 재 언급 하지만 여기서 나온 문양은 바로 '배달국' 표식입니다.

 

 

 

 

『규원사화』에 보면 ‘배달’이라는 말을 유추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실려 있다. "'단군'이라 함은 '박달나라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말에 '단()'을 '박달()' 혹은 '백달()'이라고 하며, '군()'을 '임금'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던 까닭에 단지 '백달임검()'이라고 하였던 것을, 뒤에 역사를 서술하던 자가 번역하여 '단군()'이라 하였고, 다시 후세에 전해지며 단지 '단군()'이라는 글자만 기록하게 되었기에 '단군()'이 '백달임금'의 번역인 줄을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한자의 공과 죄가 반반이다. 지금에 만약 언문(한글)과 함께 쓴다면 이러한 폐단은 반드시 없을 것이니, 곧 들녘의 어리석은 백성도 쉽게 깨우쳐 문화의 계발이 더욱 더 빨라질 것이다. " 즉, 『규원사화』에서는 단군의 단을 박달나무 단으로 해석하여 단을 박달 혹은 백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배달은 박달 혹은 백달에서 유래한 말로 보인다.

1915년 어윤적()이 자신의 저술인 『동사년표()』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산보()』에 말하기를 백두산은 일명 태백산이다. 『계림유사()』에 단()은 ‘배달()’이요 국()은 ‘나라()’이며 군()은 ‘임검()’이라 한다. 이것을 살피건대 단군은 곧 ‘단국군(])’으로, 속칭 ‘배달나라임금’이다.” 어윤적이 인용한 『계림유사』는 중국 북송 때 책으로 김교헌도 인용한 바가 있지만 중국 명나라 때 책인 『설부()』에 인용되어 전하는 『계림유사』에 위와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 확실한 근거를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윤적이 인용한 위 구절을은 후대 배달의 뜻을 추적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1930년대 호산생()이라는 필명의 인물은 "''자의 음이 본시 '백'이었으나 이를 ''‧''란 지명으로 부를 때는 흔이 '배천'‧'배치'라 하나니 '배달나무' 를 'ᄇᆞᆰᄃᆞᆯ'(朴)이라 함도 이와 근거한 말임을 알겠다. 이라하야 '밝달'의 밝은 '배달'의 ‘배’에서 전화()된 음이니, 배달()이 곧 단()이요 ‘밝달’이 곧 ‘배달’이다.”라고 하였다. 『규원사화』의 백달()의 을 '배'로 읽어 배달이 되었다고 한다. 한자로 옮길 때 '백달()'이 '배달'이 되고 한자 배달()로 바뀐 것으로 이해하였다.

최남선 역시 태백()의 은 혹 으로도 쓰고 으로도 쓴다라고 하면서 이를 밝사상으로 해석하였다. 우리는 배달의 뜻을 단군신화의 단()에서 출발했지만 원래 우리말 배달에 해당되는 뜻을 찾는 과정에서 단()이란 용어를 썼다고 이해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배달 [倍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지금까지 공부가 잘 담겨 있습니다.

단(檀)앞에도 백(白)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태백산은 백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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