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梁書), 동이열전(東夷列傳), 백제(百濟)의 근본(根本)탐구

2021. 2. 26. 00:12언어와 유전자학

양서(梁書), 동이열전(東夷列傳), 백제(百濟)의 근본(根本)탐구

 

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jo&levelId=jo_008_0010_0030_0010&types=o

그 나라는 본래 []句驪와 더불어 遼東의 동쪽에 있었다.

其國本與句驪在遼東之東,

 

 

 

백제가 원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에 있었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당연히 우리가 아는 삼국 시대(사국 시대)의 백제는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고구려와 백제의 근원이 되었던 고구려와 백제 선조들에 대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어에 본()이라 했으니, ‘이란 뿌리근원입니다.

 

고조선 시대 선 고구려와 선 백제에 대한 내용일 것입니다.

 

이미 고조선 시대 요서(고대에는 요동)에는 고구려가 있었다라고 윤내현 교수님께서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윤내현, 지식산업사, 115)에 밝히고 있습니다.

 

즉 요하문명 자리에 고구려가 다시 등장하였고, 지금의 요동반도에는 백제가 있었다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백제가 한반도 남쪽 마한의 우두머리로 발돋움 하기 전에 백제의 부여씨가 이미 고조선의 연맹국으로 요동반도에 있었다라고 추정 할 수 있습니다.

 

산동 반도의 래이(萊夷)와 더불어 요동 반도에도 래이(萊夷: 즉 배달 래족)가 있었다는 것으로

또 하나의 백제 원류를 탐구할 수 있는 소중한 구절입니다.

 

그리고 다시 신석기 시대로 돌아가 보자면,

산동에 동이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동과 백두산 근처에도 동이족이 있었다는 것으로

en.wikipedia.org/wiki/List_of_Neolithic_cultures_of_China

이 요동과 백두산 문화의 주인공을 신락문화(BC5500~4800)’라고 보는 것이고

 

 

여기서 요하로 다시 간 문화가 홍산문화로 BC 4700~2900년이고, 산동으로 건너간 것이 대문구 문화(BC 4100~2600)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언급했던 산동의 후리(Houli)문화는 BC6500~5500년으로 요하문명 신석기 소하서 문화(小河西:BC 7000~6500) 다음에 나타난 것으로

 

요하-->산동, 요하-->요동과 백두산-->산동

 

이런 문화의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정리 하자면, 백제나 고구려의 원류는 처음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이곳이 환웅의 신시(서울)이고 그 강역은 요동과 백두산 과 한반도 북부 였고, 환단고기에 따르면 뒤에 청구국으로 옮겼다하니, 청구국은 산동의 대문구 문화(BC 4100~2600)로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