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석기

2018. 10. 13. 11:09환국대동훈민정음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에서 돌가래 ·돌보습[] ·돌낫 등의 농기구와 탄화된 곡물이 발견되어 농경 사실이 입증되었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해안과 강변에 거주했던 빗살무늬토기인들은 점차 내륙지방으로 진출했는데, 이들은 원형 또는 방형의 움집을 짓고 살았다. 웅기()의 패총 움집에서는 오늘날의 화덕과 같은 난방장치도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신석기시대 (두산백과)



1.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빗살무늬토기층 밑에 새로운 토기층이 발굴되었는데, 이 토기는 바닥이 둥근 민무늬[]토기로, 원시 민무늬토기라 불리고 있다.



먼저 공부한 대로

빗살무늬 토기 인전에 원시 무문 토기 단계가 있었습니다.



2. 신석기에 이미 농기구와 농경 시작이 되었고.....


3. 해안과 강변에 거주한 사람들이 내륙으로 진출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구석기 인들이 동굴에서-->평지/낮은 언덕---->초원(현 바다)으로 퍼졌다가

바닷물에 밀려 다시 이전의 평지/낮은 언덕이었던 해안으로 왔다가 내륙으로 퍼졌는데.....


 토기의 하단부 양식으로 보거나, 고인돌의 제작 방법을 보아 서남해 남부에서 북으로 문화의 이주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특히 8천년전-6천 5백년 전에는 경남과 전라도가 바다였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4. 빗살무늬 토기 인들이 3경로로 유입되었다 했으나,


우리 원시 무문 토기인들이

제주도와 부산에 있었고, 그 문화가 빗살무늬 토기인들로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나을 듯 합니다.

그래서 이미 고찰했듯이 모스코바 박물관의 점 토기는



우리 원시 무문 토기 다음에 오는 토기로서

한반도에서 점으로만 이루어진 토기가 제작된 후 이주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는 언어상으로 한국 고어에서 러시아어, 카자흐어, 키르키스탄어, 우즈벡어, 우크라이나어가 된

경로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토기만 본다면


만3천년~ 만 년 전에  

제주도 -전라도-경상도-일국 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원시 토기 문화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더 넓히면 아무르 강가의 토기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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