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묘 고찰,

2018. 6. 3. 20:37양구강릉청주강화상주태안군산부안

모 묘(苗) 고찰


만약 네이버 사전에 올려진 대로 苗에서 온 '모' 라면, 벼농사의 시작이 중원이 됩니다.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13511300&re=y





밭 농사와 구별이 되는 논농사에 있어 '모'는 중요 단서가 됩니다.


그런데 이미 상당수 알려져 있지만, 최고 볍씨는 소로리 볍씨입니다.


http://sorori.cheongju.go.kr/sub.php?menukey=24


많은 볍씨가 출토되어 1-2차 조사에서 중점적으로 발굴된 중부 토탄층(MSL 32.13~30.5m)을 미국 Geochron Lab.(GX)에서 8개의 연대치를, 서울대학교 AMS연구실(SNU)에서 6개 등 모두 14개의 시료를 연대측정치가 12,500~14,820 BP를 나타내고 있다.

<< 위 자료 중>>


1개의 볍씨가 아닌, 14개 시료, 한국과 미국에서 측정했는데, 만 4천 5백- 만 7천년까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만년전 중국이나 인도에서 재배된 것 보다 최소 4천 -5천년이나 앞선 볍씨입니다.


더 자세한 설명

http://sorori.cheongju.go.kr/sub.php?menukey=28



재배 벼라면,


모를 심어 벼를 만들었을 것이니,


우리말 '모'에서 나온 '묘(苗)'인 것입니다.


만 5천년전 벼 농사를 한 인류의 첫 어른들이십니다.


그래서 '모'는 '엄/움' 가 동의였을 것입니다.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6319900&directAnchor=s264682p169161d223685



즉 '움' 의 변음 '모'

 

그리고 '구석기 야외 유적' 이니,

동굴에서 나와 움막 생활을 한 것도 이 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