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박물관

2016. 5. 8. 18:56대구춘천원주단양마산여수의령청송양

1. 춘천박물관입니다.

 

 

 

 

2.

 

 

 

 

 연표에 고조선 기원전 2333 이라 딱 적어 놓아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 다시 돌아와 보니 낙랑이 기원전 108년에 나옵니다. 약간 기분은 언잖았는데, 생각해 보면 낙랑이 한반도가 아니라 요동 요서라면 민족사학계와 의견이 일치하는 것이니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후대 국명이 부여, 동예, 옥저, 삼한으로 분리 되지만, 원래 고조선을 구성한 우리 겨레의 부족명입니다.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세종실록 154권, 지리지 평안도 평양부

지리지 / 평안도 / 평양부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朝鮮),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림이 되었다. 단군비서갑(非西岬)하백(河伯)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으니, 부루(夫婁)이다. 이를 곧 동부여(東扶餘) 왕(王)이라고 이른다. 단군당요(唐堯)와 더불어 같은 날에 임금이 되고, 우(禹)도산(塗山)의 모임을 당하여, 태자(太子) 부루(夫婁)를 보내어 조회하게 하였다.

 

원문

檀君古記》云: 上帝桓因有庶子, 名, 意欲下化人間, 受天三印, 降太白山神檀樹下, 是爲檀雄天王。 令孫女飮藥成人身, 與檀樹神婚而生男, 名檀君, 立國號曰朝鮮朝鮮尸羅高禮、南北沃沮、東北扶餘, 皆檀君之理。 檀君聘娶非西岬河伯之女生子, 曰夫婁, 是謂東扶餘王。 檀君唐堯同日而立, 至塗山, 遣太子夫婁朝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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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에서 당대 학자분들이 '단군고기'를 인용하였고, 이는 윤내현 교수님 연구와 그대로 일치합니다. 후대 분국되면서 원 부족명이 국명이 된 것이고, 모두 '고조선' 단군 통치 아래에 있었습니다.

 

적어도 세종 다음 시기까지, 모든 학자분들이

'단군고기'를 읽었고,

고조선의 통치 영역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400-1500년대 어른들 조차 이런 역사관이었는데, 현재 뭐시기 자리에 있는 자들의 역사 인식이란, 혀를 찰만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