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실크로드, 파키스탄, 북인도 여행기 (26일차) - 라호르 (박물관, 아나르깔리 무덤, 살라마르가든, 와가보더)

2012. 10. 12. 13:40김해,고성,합천,진주,부산,양산,밀양

 

 

 

 

 

 

 

 

 

 

 

 

 

 

 

 

 

 

 

 

 

 

 

 

 

 

 

 

 

 

 

 

 

 

 

 

 

 

 

 

 

 

 

 

 

 

 

 

 

 

 

 

 

 

 

 

 

 

 

 

 

 

 

 

 

 

 

 

 

 

 

 

 

 

 

 

 

 

 

 

 

 

 

 

 

 

 

 

 

 

   (*) 라호르 (Lahore) :  (지명 의미 ?)

 

       -  인더스강 지류인 라비강을 따라 형성된 인더스평원 북부에 위치하며, 파키스탄에서 카라치에 이어 2번째로

          큰 도시로서 펀자브주의 주도이며,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구 11백만명, 2011년도 기준).

 

       -  역사적으로 이슬람제국의 중심도시로 발달해왔는데, 특히 무굴제국하에서는 인도의 델리, 아그라와 더불어

          제국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황족의 거처가 되기도하는 등, 4대 황제인 샤자한의 통치 아래서 크게 발전했으나,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통치하면서 쇠퇴했다.

 

       -  상업과 금웅의 중심지로서 파키스탄 산업시설 가운데 약1/5이 이곳에 들어서있고, 파키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펀자브대학교 (1882년)가 있는 등 교육중심지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철도와 항공편으로 파키스탄의 주요도시와

          연결된다.

         

 

 

   (*) 무굴제국 (1526 ~1858) :

 

       -  무굴(Mughul)은 몽골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로, 무굴제국은 인도를 통일했던 가장 강력했던, 그러나 최후의

           이슬람왕조이다.

 

       -  1398년 인도를 침입한 티무르의 5대손인 바부르가 무굴제국을 세웠으며, 3대 악바르대제 때에 제국의 기틀을

          확립하고, 6대 아우랑제브황제 때 인도 데칸지방까지 차지하여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후 내란과 제후의 자립 등으로 급속히 쇠퇴하면서, 1757년 실질적인 영국치하에 들어갔으며, 1858년에

          영국에 의해 완전히 멸망되었다.

 

       -  무굴제국 이전의 이슬람왕조들이 인도의 주류를 차지한 힌두문명과 웅합하지 못해 단명했던 것에 반해, 무굴제국은

          이슬람과 힌두문명의 교류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기며 331년간 장수를 누릴 수 있었다.

          무굴제국 시기에 형성된 문화는 인도 역사에서 황금기를 누렸으며, 특히 건축, 문학, 음악 등은 힌두문화와

          터키-페르시아계 문화의 웅합으로, 오늘날 인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처 : 가을전어
글쓴이 : 가을전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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