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밀양 손씨 계파

2009. 11. 10. 21:13대한민국 가문 탐구

密城君(밀성군) 孫 贇(손 빈)

 

(密城君) 휘 빈(贇)의 묘소

▲ 밀성군 휘 빈(贇) 묘소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初同面 鳳凰里).

 

공의 휘는 빈(贇),

시조 문효공(文孝公)의 19세손이며

고려 충렬왕조(忠烈王朝)시 문과에 등제(登第)하여

 

충선(忠宣), 충숙(忠肅),

충혜(忠惠) 사조(四朝)를 섬기며

정사에 청렴요결(淸廉要決)하니 공적이 컸었다.

 

충숙왕(忠肅王)때

병부상서(兵部尙書)로서 출정하여

북방에 침입한 여진(女眞)을 토벌하고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

 

온성(穩城)에 있는 전승비(戰勝碑)에

정북 대장군 손모지비 운운(征北大將軍孫某之碑云云)하고 있다.

 

충혜왕(忠惠王) 때에는

조적(曺?) 일당의 반역을 토벌한 공로로

금자영록대부, 집현전 대학사 감수국사 정당문학 상장군(金紫榮祿大夫 集賢殿大學士 監修國史 政堂文學上將軍)에 오르고,

 

사도(司徒)에 승배(陞拜) 되었으며

밀성군(密城君)에 봉해졌다.

 

문, 무 겸전하여

국가에 기중(重)한 바 컸다.

밀양손씨의 현조(顯祖)이다.

 

 

後知堂(손인갑) 쌍절각

 

증판서공(贈判書公) 휘 인갑(諱 仁甲)의

사적 ?∼1592(선조 25년).

 

조선 중기의 무신ㆍ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첨정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 장령(掌令) 정인홍(鄭仁弘)의 의병부대에 합류,

 

중위장(中衛將)이 되어

실질적인 군지휘 책임자로서

뛰어난 통솔력을 발휘하였다.

 

합천군수 전현룡(田見龍)이

적을 두고 달아나자 그를 대신하여

한때 합천가장(陜川假將)을 맡기도 하였다.

 

1592년(선조25) 6월 초순에 벌어진

무계전투(茂溪戰鬪) 때

정인홍군의 선봉장이 되어

적병 100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는데,

 

이때 그는 3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적진을 포위한 다음 50여 명의 정예병을

직접 이끌고 왜군의 병사(兵舍)에 뛰어들어

기습전으로 적을 대파한 것이다.

 

그해 6월 말에 있었던

초계(草溪)의 마진전투(馬津戰鬪)에서도

특출한 전술을 구사, 낙동강을 항해 중이던

왜선단(倭船團)을 급습함으로써 이를 격파한 뒤,

 

잔류 적선을 섬멸하기 위하여

말을 채찍질하며 물 가운데로 추격하던 중

하상의 묽은 모래와 진흙 속에 그대로 빠져

애마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

 

뒤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자(字)는 원백(元伯),

호(號)는 후지당(後知堂)

부산포첨사(釜山浦僉使).

선조(宣祖)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쌍절각(雙節閣)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宜寧郡 芝正面 城山里)

 

병조판서 휘 인갑(諱 仁甲)이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적을 섬멸하기 위해

초계의 마진(馬津) 전투에서 격전중

 

애마(愛馬)가

뻘 속에 빠져 전사한 것을 본

아들 약해(若海)가 부친의 원수를 갚으려

적들과 최후까지 싸우다 전사하였다.

 

전후에

향리의 유생들의 상소로

판결사(判決事)에 추증되고

쌍절각의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密陽 孫氏系派(밀양손씨계파)

 

손씨 세계도(世系圖)에는

원조 손구례마로 부터

31대 諱 順(문효공)이 시조이다.

 

시조 휘 순(順 )1세에서

19세 密城君 諱 빈(贇)으로부터

밀양 손씨의 분파도가 형성된다.

 

密陽孫氏大同譜(밀양손씨대동보)에 의하면

우리 계보는

師傳公諱탁四世孫敬止派(사전공휘탁4세손경지파)

즉 敬止公派(경지공파)다.

 

 

종친회에서는

경지공파 중 後知堂公派(후지당공파)라고도 하고

 

탁(貝조개 패,와 卓높을 탁의 합성 탁)字派 중

後知堂公派 다.

 

휘 순으로부터

휘 탁은 21세손

휘 경지는 25세손

휘 인갑(후지당)은 30세손이며

 

휘 탁은 22대조

휘 경지는 18대조

휘 인갑은 13대조 할아버지시다.

 

諱 仁甲은

호가 후지당이므로

後止堂公派라 하고

합천지역 중봉 충효사에 배위되어 있다.

 

휘 순으로 부터

증조부 휘 基玉(기옥)은 41세손

고조부 휘 載義(재의)는 42세손

조부    휘 德萬(덕만)은 43세손

 

그리고

나는 44세손으로

밀양손씨대동보 2권 752쪽에 등재되어있다.

 

 

 

 

 

출처 : 갈길이 멀다.
글쓴이 : 백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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