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절.

2009. 9. 29. 20:48세계정음 수필.

여러분은 제가 단군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놀랐을 것이고,

대부분 거짓 위조라고 대다수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그리워 했던 기억은 얼마든지 기억합니다.

 

 

예로 제가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 갑니다.

 

 

대학 86학번이니,

83년에 진주고등학교로 돌아갑니다.

 

2학년인가, 3학년인가 제가 둘 다 좋아한 친구가 싸움이 붙었더군요.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요.

 

그런데 아무런 무공도 없는 상태에서 두 친구가 좋아 나섰지요.

 

 

 

저는 어린 시절까지 갑니다.

 

할아버지가 수박을 사러 장까지 저와 손잡고 4-5살에 가셨지요.

(이 부분이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수박을 샀는지 아닌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신체적으로 조금 허약했지요. 체육도 뭘 잘 하는게 없었지요.

 

지금 저를 보시면

이해가 안되실 겁니다. 각종 무예에 헬스에 ...)

 

합천 가회 장대

제가 태어난  본가에서 제 집 마루 댓돌 올라 가다 굴러 떨어진 그런 기억까지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그 높이가 보통이 아니었지요.-

 

 

제가 40대이니, 50-70대 ,80대는 , 제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아십니다.

 

역시 아버지,큰아버지,5촌 아재가 모두 이 현생에 없으니 마음 아프군요.

 

 

외할아버지 초계 정씨의 어르신께서는 아직도 생존해   계십니다.

-너무 존경합니다. 제 영혼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어린시절 그 외할아버지따라 합천 쌍백에서 제일 먼 곳 외갓집까지 외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같이 걷던 아득한 길(그때는 버스도 얼마나 오래 있어나 모릅니다.) 도 생각납니다.

 

 

물론

가끔

합천 쌍백  외갓집에서

뛰어 놀다 "다리"에서 떨어져 아득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고모부이신 성은 "전" 이름은 모릅니다.

너무나도 조용한 성품에 놀랐습니다.

 

고모부집 앞에서 개구리 낚시 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러분도 그러하겠지요.

 

그런데

의령 고모부 집에 놀다 고종 형님과 다투었지요.

걸어서 의령에서 진주까지 가겠다고, 그렇게 고모 와 고종 형님들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늘 어릴 때부터, 그렇게 고집이 엄청.

 

 

고모부와 고모는

아주 아주 오래 전에 돌아 가셨지만, 마음으로 늘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아름다운 기억 없나요?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행복한 기억은 얼마든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단군조선의 그 시절이 영혼의 기억처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