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
|
1 |
|
지상에 태어나 있는 것이 슬픔처럼 다가올 때 하늘을 봅니다. 파란 하늘에선 맑은 현들이 무수히 소리를 내고 소리의 끝을 따라가노라면 문득 그대에게 이릅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대여, 그대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저리도 환한 것이 내 슬픔의 이유인지요. 환하게 빛나는 그대의 빈자리 위로 나는 내 슬픔의 새떼를 날려 보냅니다. 소란스레 하늘로 퍼져가는 새떼들이 멀리 잠들어 있는 그대를 깨울지도 모르겠습니다. |
|
|
2 |
|
흔들리는 갈대 사이로 점점이 흩어지는 내 슬픔의 새떼를 보는 것이 그대의 아침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동터오는 노을을 보며 엷은 미소라도 지으십시오. 소란스레 하늘로 퍼져가는 새떼들은 이미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새떼들은 환하게 빛나는 그대의 빈자리를 지나며 뜨겁게 파고드는 파편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새떼들이 날아가 박히는 하늘이 붉게 물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터오는 노을을 보며 엷은 미소라도 지으십시오. 그것이 삶의 이유일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
*김진경 , [슬픔의 힘](2000) 에서 |
|
|
지금은 2009년 8월 23일, 낮 3시를 지납니다. |
그날 이후 100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또 한 분의 큰사람을 보냅니다. |
이 늦더위 속에 그분을 보냅니다. |
|
새벽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자다 깨 영결식 화면을 보며 |
[슬픔의 힘] 이라는 묵은 시집을 꺼내 들었습니다. |
시집을 펼치니 처음 만나는 詩가 바로 이 <가을 편지> 입니다. |
|
고인이 열어놓으신 평화와 화해의 길을 이어 민주주의와 통일의 싹이 움터왔듯이 이 늦더위 뒤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이제는 압니다. |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 떠나시고 남은 자리는 크고 깊어 공허하지만 언젠가 또 다른 인연, 더 큰 믿음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
지난번 스스로 약속하였듯이 이제는 울지 않고 보내드립니다. |
우리는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끝내 웃으며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
그러니, 편히 가십시오. 뜻을 이어가는 삶,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 故 김대중 前 대통령 |
|
2009. 8. 23. 저 하늘에 바람 불어옵니다..... |
|
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