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과한 추증

2016. 6. 26. 17:27천문에서 갑골문으로

좀 지나친 현재 추측이지만,


갑골문의 상나라가 성립하는데 있어 언어학 적으로 현 남한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라면,


요하의 고조선 이전 문화나 고조선의 일부 집단이 상으로 온 것이 아니라,


기원전 2천년 쯤 남한의 어떤 세력이 중원으로 진출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이건 그냥 첫 추리로...


제가 북한 박물관을 가 보거나 자료를 입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므로....




13세 단군 흘달


기원전 1767년


이해 겨울에 은나라 사람이 하나라 사람을 정벌하니,....(중략)


정신세계사,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주해,  88쪽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3463&cid=40942&categoryId=33401


현재는 기원전 1600년 경 정도로 봅니다.


환단고기와는 167년 정도 차이가 있지만, 당시 중원 정치 권력 교체에 고조선이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혹은 당장 정벌이 완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 뒤에 상왕조가 하왕조의 터전을 뱄었다고 보아도 됩니다. 동북 지역에 상부족이 형성되면서, 고조선은 상 부족을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이리두 문화=하나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73744&cid=40942&categoryId=33388


 

하나라 설명 , 보충

https://ko.wikipedia.org/wiki/%ED%95%98%EB%82%98%EB%9D%BC

 

 재미있는 것은 '하나라'의 영역 표시도 입니다. 저 조그마한 곳이 었습니다. 당시 하나라는 우리 배달동이족과 고조선의 국력에 비하면 정말 미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배달 시절


서해와 남해의 일부 부족과 당시 산동에 있었던 세력 중에

우리 문화와 깊은 연관 있는 세력이


이리두 하나라를 멸하고 상을 세운 것으로 봅니다.  


임승국 선생님 말씀대로 중원까지 인구를 잡자면 1억 8천만도 날조는 아니라고 봅니다.


당시 가장 풍요롭고 인구가 많은 지역의 총계이니 가능한 숫자라고 봅니다.


즉 산동이 원래 섬이었을 시절

배달족 겨레가 중원 대륙과 연결된 후,

하나라를 타도하고 세운 나라가 상나라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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