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수덕사의 가풍- 참선 에서 견성으로

2009. 11. 6. 09:18울산, 대한민국풍경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좋고 ,나쁨을 생각하지 않고

                               옳고 그름에 관계하지 않고

                                있고 없음에 간섭하지 않아서

                      마음을 안락 자재한 경계에 거닐게 하는것

                                  그 것이 禪이 아닐까 ? 

    선의 으뜸 사상을 내세우는 수덕사의 가풍은 이렇한 禪法을 사찰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 같다. 경허선사에서 만공스님으로 이어지는 이 절의 가풍은 참선에서 시작하여

견성에서 그 결실로 맺어지는 모양이다 

 

 산사에서  일주문을 들어 서는것이 수행의 첫번 째 관문이라 들었다.

                                 이곳에서 나무아미타불  외며  세번 절하고 들어 간다 

 

 

 

 

 

 

 

 수덕사의 창건 설화 , 설화란 후세 사람이 재미를 섞어 만들어 낸 넉픽션 이야기 지만 , 그래도 재미 있다

* 홍주마을에 사는 양반집 도령 수덕도령이 사냥터에서 만난 모령의 낭자를 만나  혼자 만의 사랑에 빠지게  

 되다가 수소문 한결과 건너 마을에 혼자 산다는것을 알게 되자 ,청혼을 하게되지만 여러번 거절 당한다,

 수덕 도령의 끈질긴 청혼에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집 옆에 절을 하나 지어 줄것을 조건으로 허락한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짖기 시작하였다  .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에 절을 완성하는순간 불 타버렸다. 다시 목욕 재개하고 절을 지었으나 낭자 생각 때문에 두번째 짖던 절도 불타버리게 되었다.

 세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완성하니  덕숭낭자도 어쩔수없이 결혼을 허락하며  절대로

 손도 잡으면 않된다는 조건으로 결혼 했다. 그러나 어찌 그 정열을 주체할수 있으리, 마침내 강제로 덕숭낭자를 끌어 안는 순간 뇌성벼락이 일어나며 순식간에 덕숭낭자가 바위속으로 들어가며 버선 한짝 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 바위가 현재 관음보살상 뒷편 바위이며 버선이 꽃이 되니 이꽃을  버선꽃(골담초)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 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라 했다고  한다            < 덕산향토지에서 발췌 >    

 

                                                                        <관음 바위 와 관세음 보살상>

 

* 일엽스님을 모르는 분이 거의 없을것이다. <청춘을 불사르고>의 유명한 책으로 조선의 인테리 신여성.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일엽은 필명이여 본명은 김원주 법명은 하엽스님,

1896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  23세에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1919년 24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유학가는 신여성 이였다. 잡지 "폐허의 동인을 활동도 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자>를 간행하여 주간이 되고 ,동아일보기자로, 교원으로 지내기도 하였다.

38세에 만공스님을 만나 견성암 (지금의 환희대)에서 머리를 깍고 하엽스님이란 법명을 받게 되며 스님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1971년 수덕사 환희대 원통보전에서 입적했다 . 그후 하엽스님의가풍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선방, 견성암이 비구니 들의 선방으로 이곳에서 정진하고 있다..

 

  절집에  " 파초 " 가 있는 이유를 아십니까?

  파초는 < 탈속 > 이라는 꽃말로 해서 절집에 잘어울리는 식물이랍니다. 

 

출처 : 혜천의 바람흔적
글쓴이 : 혜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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