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가야산헤인사

2009. 11. 6. 08:30문학과 건축, 서예

화엄(華嚴)사찰(寺刹) 탐방기[1]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 편
글.김범선(소설가. 본지 논설위원)
[115호] 2004년 05월 18일 (화) 00:00:00 시민신문 영주시민신문

▶정말 공짜 
2004년 5월 9일 8시 20분,
 버스가 시민회관 광장을 출발하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정말 공짜란 말인가? 혹시나 하고 아내에게 3만원을 얻어 놓았지만 걱정이 된다. MBC 문화 기행이 참가비 2만원이니 그 정도는 들지 않겠나? 세상에 공짜가 어딧노? 버스가 예천 통로에 접어들자 2호차 인솔자인 황재일 님이 마이크를 잡고 안내 방송을 시작한다.

인사말과 함께 '저는 인솔자가 아니고 도우미니 오늘 하루 심부름 많이 시키십시오.' 한다. 출발 전에 보니 우 선생님이 생수와 빵을 나눠주었는데 내외분이 오늘 하루를 아주 희생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황재일 님이 안내하기를 화엄 10사찰 중 그 첫 번째로 오늘 해인사를 탐방하게 된 것은 제2회 부석사화엄축제(2004.5.1-5.30)행사 기간 중 문화관광부 선정 5월의 문화 인물로 의상대사가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 행사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설명을 듣고있는 답사단
그리고 덧붙이기를 오늘 이 행사에 참가하신 연세 많으신 분들이 영주시민신문에 전화하기를 해인사 절 구경시켜 주고 오는 길에 보약 사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냐, 고 문의하시는데 오늘 이 행사는 문화관광부와 영주시가 지원하고 부석사 화엄축제조직위와 영주시민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로 순전히 공짜, 라고 해서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평소 필자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다. 산 구경은 소백산으로 가고 절 구경은 부석사로 가고 강은 서천 강을 보면 그만이지 구태여 그 먼 데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고 살았더니 팔공산 갓바위도 못 가보고 지리산 구경도 못하고 해인사도 못 가 봤다.

초봄에 금강산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그런 생각이 들어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가야산 해인사를 간다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해인사가 부석사와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잘하면 학창시절에 동문 수학했던 백련암에 원택 스님도 만나 볼 수가 있지 않겠는가? 아마 영주서 해인사까지 가자면 4시간은 족히 걸리겠지? 같이 동행을 한 김 고문이 넉넉잡아 2시간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정말 그것 밖에 안 걸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인데

   
▲ 설명중인 해인사 홍제스님
버스는 합천 시가지를 지나 신록이 우거진 산악 지대로 접어들었다. 옛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 더니 가야산 입구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2대의 버스는 해인사 입구에 도착하자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라는 성철 스님은 안 보이시고 온통 산은 물에 젖고 물은 산이 된 가야산 해인총림이 반가이 맞아 준다.

조경이 잘 된 해인사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오석(烏石)에 '김영환 대령 공덕비' 가 서 있다. '출가하신 스님 중엔 전직 군인도 있구나'하는 무식한 생각을 하며 일주문을 들어서는데 인솔 선생님이 빨리 점심 공양부터 하라고 독촉을 한다.

아무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배부터 채워야지. 서둘러 반 지하 공양소로 갔더니 일행이 줄을 서 있다. 예로부터 절 밥은 맛이 좋다고 하더니 그 말처럼 해인사 점심 공양은 정말 맛이 있었다.

   
▲ 열심히 설명중인 홍제스님
점심 후에 종무원에서 해인사를 찾아온 영주 시민들을 안내를 해 주신다고 한다. 불이문을 지나자 키가 훤출한 스님 한 분이 나와서 자기 소개를 하신다. '소승은 홍제(洪濟) 라고 합니다. 영주에서 오신 불자님들은 정말 행운이십니다. 저는 1년에 딱 한번만 절 안내를 하거든요, 절 만나시려면 내년 이맘때라야 보실 수가 있습니다.' 정말 입담도 구수하고 유머도 있고 소탈하다. 아, 그런데

▶해인사 스님
 '스님 눈이 왜 저래?' 일행 중 한 사람이 속삭인다. 정말 4층 석탑 앞에서 안내하시는 스님의 오른쪽 눈이 왕방울처럼 부어 있다. 눈을 다치신 것 같다. 그런데 스님은 전혀 괘의치 않고 안내에 열심이시다.

일행 중 한 분이 '스님, 눈이 저 정도면 상대방은 얼마나 다쳤겠노' 낮은 소리로 농담을 하신다. 그 스님을 인디안 말로 이름을 부치면 '오른쪽 눈에 물리적인 힘을 받아 눈알이 왕방울처럼 부은 스님' 이라고 불러야 한다.

   
▲ 홍제스님
불가에서 스님에게 불경하면 그것도 큰 잘못이다. 홍제 스님께서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머리에 뜸을 잘못 떠서 눈이 그렇게 부었단다. 그런데 필자가 홍제 스님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은 보경당 벽화에서 그분이 설명하신 내용이 너무 좋아 그러하다.

해인총림은 역대 선승들과 팔만 대장경으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더구나 3보 사찰 중 하나이다. 법보 사찰 해인사, 불보 사찰 통도사, 승보 사찰  송광사 중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제 사찰이다. 사찰 소개는 해인사 홈페이지나 기타 매체를 통해 더 잘 알 수가 있으니 여기선 줄인다

 ▶한 폭의 벽화
필자는 해인사의 잘 알려진 그런 내용보다 숨어 있는 그림들을 보고 싶었다. 홍제 스님이 한 폭의 벽화 앞에 섰다. 그리고 그 벽화를 가리키며 불법에는 법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바로 중생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유정들과 무정들의 법인데 탐.진.치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중생들의 세속적인 삶에 모든 문제들과 번뇌가 홍제 스님이 설명하신 그 한 폭의 벽화 속에 숨어 있었다.

그 그림은 불길(생노병사)이 타오르는데 코끼리(무상)가 쫓아오자 도망치다 구덩이에 떨어진 한 남자(인간)가 외줄(생명)을 잡고 있는 그림이었다. 구덩이 밑에는 4마리 뱀(지수화풍)이 혀를 날름거리며 입을 벌리고 있다. 실제로 그림에는 3마리 뱀이 그려져 있었으나 홍제 스님은 4마리 뱀이라고 우기셨다.

그리고 그 한 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다고 농을 하셨다. 그리고 외줄 옆에는 꿀( 오욕: 식욕, 색욕, 재욕, 명예욕, 수면욕,)이 흐르는 벌집이 있었다. 어리석은 인간은 왼손으로 줄을 잡고 오른 손으로 꿀을 따먹는데만 정신을 팔고 있었다.

그 줄을 검은 쥐(밤)와 하얀 쥐(낮)가 교대로 갉아먹고 있는 데도 말이다. 바로 인간 삶의 모든 비밀을 이 보다 더 잘 묘사한 그림이 있을까?     

▶대적광전 치미
홍제 스님이 대적광전 위 용마루 양끝에 보이는 저 기와가 무엇으로 보이느냐고 물었다

속가에서 올린 기와집과 눈에 띄게 다른 모양에 같이 간 일행들이 용꼬리? 빗자루? 그런데 스님은 '치미' 라고 말씀 하셨다. 바로 물고기 꼬리라는 것이다.

   
깊은 산 속에 있는 목조 사찰들은 화재에 아주 취약하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에는 사찰에 한번 불이 나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물고기의 꼬리를 용마루 끝에 얹어 화기를 잠재우려 했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홍제 스님은 우리 일행에게 한국에서 제일 좋은 잔디 구장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바로 해인사에 있다는 것이다. 의아해 하는 우리들에게 스님은 바로 요 너머 있다며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키신다. 

해인사 스님들은 예로부터 수행 중 축구를 많이 하셨다고 한다. 불이 나면 곧바로 쏜살같이 달려가 불을 끄기 위한 체력 단련과 일종의 소방 훈련이었다. 속세를 떠난 스님들이 그런 잔디 구장을 가지고 있겠는가? 단지 해인 총림을 화마로부터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심하였는가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설명이다.

▶장경각
  이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 사람은 누구일까.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답은 몽고족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이다.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가 고려를 침략하자 고려왕조는 1232년(고종19년)에 강화도로 천도하였다.

그리고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에 대항하여 싸웠다. 기마 민족인 몽고인은 해전에 약했다. 고려왕조는 강화도에서 삼천리 불국토를 지키기 위해 국력을 모아 부처님 말씀을 모은 경전을 17년 간에 걸쳐 완성하였다.

1236년(고종23년)에 강화도에 장경도감을 설치하고 총 1,511부, 6,802권, 81,137매의 장경을 조조(肇造) 하였다. 4톤 트럭으로 70대 분량이라고 한다.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의 중요성은 여기서 줄이겠다. 홍제 스님 설명으로는 장경각은 가야산 해발 600m 고지에 위치해 있어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자연 통풍이 가장 잘 된다고 한다.

그리고 바닥은 숯과 황토, 조개의 껍질을 잘게 부순 가루로 다져 방충, 방습, 부식 방지를 한다고 한다. 한때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해인사를 방문하여 화재의 위험으로부터 장경을 지키기 위해  시멘트로 신 장경각을 건축하여 경판 일부를 옮겼으나 부식이 심해 본래의 자리로 환원하였다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995년 팔만대장경은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하였으나 동산(팔만대장경)은 불가하여 장경각이 위치한 해인사 전부를 지정 받았다고 한다.

▶가야산 해인총림
  홍제스님 설명으로는 해인사는 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海印' 이라고 했던가. 만상(萬象)을 비추는 잔잔한 바다에 깨달음의 도장 하나 찍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출렁거리는 바다에 도장 한번 새기려다 물배만 가득 채우고 되돌아간 스님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 해인사가 사변 때 완전히 소실 될 뻔했다고 한다.

   
군 작전 명령으로 김영환 대령이 해인사를 폭격하기 위해 네이판탄(소이탄)을 가득 싣고 해인사 상공으로 왔다고 한다. 그런데 해인사에 포탄을 투하하려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문화유산이 자기 손끝에서 재로 변하게 생겼다는 생각에 대령은 다른 지역에 포탄을 투하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미군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고 대통령은 김 대령에게 그 책임을 추궁했다. 그러나 그분은 후에 해인사를 지켜 낸 공덕을 인정받아 장군으로 진급했다고 한다.

필자가 해인사 입구에서 제일 먼저 본 비석이 김영환 대령 공덕비였다. 여러 선사님들이나 성철스님 부도보다, 눈에 먼저 띄는 그 자리에 그분의 공덕비가 서 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대적광전 앞 게시판
의상대사가 세운 화엄 10찰 중, 가야산 해인총림까지 와서 대적광전에 부처님을 뵙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적광전으로 가다가 문뜩 백련암 생각이 났다. 원택 스님께 전화를 했더니 출타 중이란다. 휴대폰을 썼더니 대구에서 받았다.

못내 아쉬워하신다. 홍제 스님은 대적광전에 주불은 비로나자불이라고 설명하셨다. 삼배를 올리고 명부전 앞을 지나는데 눈에 익은 사진이 보였다. 故 정몽헌 회장의 영정이다.

사진 속에 그분은 활짝 웃고 있는데 객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우산을 받쳐들고 대적광전 뜰 앞에 내려섰다. 쏟아지는 빗속에 게시판이 홀로 서 있었다. 누군가 한지에 붓글씨로 이렇게 써 놓았다.

'나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고
죽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멸함이라.
뜬구름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을.'
    ---작자 미상-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해인사를 내려오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생에 나도 한번 바다에 도장을 찍어 봐?

'이 세상에 나는 사람 어디에서 온 것이며
이 생에서 죽는 사람 어느 곳에 가는 거뇨

나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일어나고
죽는 것은 한 조각의 뜬구름이 멸함이라.

뜬구름 그 자체가 본래 실상 없는 고로
나고 죽고 가고 옴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출처 : 김범선의 소설이야기
글쓴이 : 범선소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