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원주 원씨 -원경 할아버지(펌)

2009. 8. 5. 15:54대한민국 가문 탐구

원주원씨(原州元氏) 

 원주원씨의 시조 원경(元鏡)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고구려 보장왕 때 당태종이 파견한 홍경(洪鏡), 지경(池鏡), 신경(辛鏡) 등 경(鏡.거울경)을 이름으로 하는 8학사 중의 한 사람이다.

 천문, 정치, 전쟁, 도덕 등에 조예가 깊었던 원경은 고구려에서 평장사에 올랐다. 당태종이 경(鏡)을 이름으로 하사한 것은 "모든 사람이 본받을 수 있는 거울이 되라"는 뜻이었다.

 고려 때 원씨 문중에서 뛰어난 인물은 고려 개국공신 원극유. 원익겸. 원충갑이 있다. 이들 3명은 이 땅에 원씨의 뿌리를 내린 3대 산맥이다. 이 가운데 원극유는 고려 개국에 기여한 공으로 원주백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본관을 원주로 했다.

 원천석은 원주원씨 문중의 정신적인 지주다. 그는 여말의 대문장으로 이방원(태종)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이성계의 등장으로 정계가 어지럽자 관향인 원주로 낙향했다. 왕위에 오른 이방원이 원천석을 찾아 치악산까지 갔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읊은 시가 바로 유명한 “회고가"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의 묘한 관계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렸던 원균 장군 또한 원주원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원균은 과연 교과서에 나온 대로 간교한 졸장이었는가. 이 같은 물음에 그의 후손들은 단호히 반론을 제기한다. 선조가 원균을 왜 선무1등공신으로 서훈(敍勳)했겠느냐는 것이다. 원균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후손들은 입을 모은다.

 2000년 현재 109,505명이다. 주요파는 ▲운곡계 경파 ▲원성백계 극유파 ▲시중공계 익겸파 등이다

출처 : 원주재
글쓴이 : 주피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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