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7. 08:55ㆍ대한민국 가문 탐구
경주 최씨 고택 | |
사회층의 도덕적 해이와 부적절한 사건이 터질때 마다 연상되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란 용어다.
사전적 의미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도덕의식은 계층간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요세 각광 받고 있는 가문이 한 곳이 있는데 바로 찢어진 워커가 살고 있는 경주 최씨 집안이다. 경주에 드다든지도 거의 11년째이고 경주에 눌러 앉아 산지도 벌써 5년이 넘어가지만 정작 가볼 기회는 2008년초였다. 정계에서 시다바리를 하던 대학 선배가 정권이 바뀌게 되자 마지막으로 지인(후견인)에게 신세를 지기 위해 방문하였을 때 인데 선배 가족 얼굴이나 보러 나갔다가 전직 모 대학 사학과 교수의 가이드를 받으며 함께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까지는 경주최씨란 이야기는 들었어도 실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별 관심도 없었다.
위치는 경주시 교동 69번지 (중요민속자료 제27호)이며 앞에서 바라보면 좌측에 유명한 경주 교동 법주집이 있고 우측으로는 경주향교와 담을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요석궁이라는 경주 최씨 자손이 경영하는 요리집(??)이 있는데 한때 경주가 관광지로 잘 나갈때는 유명인사들이나 일본 관광객들로 불야성을 이루던 식당이라 한다. 함 들어가 먹어 볼 생각을 해 보았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아서 포기를 했다. 1인분에 최소2만원이상으로 3만원, 5만원, 7만원, 10만원 짤기로 구성되는데..혼자가면 손님 받지도 않고 둘이 가면 3만원짜리 즉 6만원 짜리를 시켜야 한다고 하니..뭐 3명은 2만원 짜리가 가는하다고 하는데. 워커 장인어른의 야그에 따르면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거 없다고 가면 후회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요석궁 바로 밑에는 경주 최씨 최준의 둘째 아드님의 하여간 잘은 모르겠는데 그 후손의 집에 최첨단 보안 장치를 장착한 집에서 살고 계시다. 요석궁의 주인이시기도 한데 한때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셨다. 최씨 집안의 후손이란 것도 있었지만,,,그 보다는 완펀치 쓰리걍냉이(먼 말이여..ㅋㅋ)의 대빵, 경주 오야붕으로 더 유명했다고 하는데 이젠 연로하셔서 은퇴를 하셨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옛 경주 시민들 사이엔 유명한 분이셨다. 그 바로 앞엔 경주 박물관을 지나 반월성을 휘감으며 흐르는 작은 개천이 있고 샛길로 빠저 쭉~~ 가면 계림과 그리고 반원성이 나오고 첨성대로 이어진다.
얘기가 너무 길어진거 같으니 일단 사진이라도 ...ㅋㅋㅋ
여기가 경주고택 바로 앞. 사진 죄측엔 경주 교동 법주 집이 있고 우측엔 향교 담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경주 교동 법주에 들려 전통 경주 법주를 한병 구입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가격은 한병에 최소 32000원 부터인데 워커는 주로 선물용으로 35000원짜리를 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금복주인지 어딘지에서 만드는 경주법주는 사실 가짜라 보시면 됩니다..진짜는 경주 교동 법주죠..@@
일단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 있는 설명 간판부터 읽어보고...
일단 안에 들어서면 보이는 것이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이다. 1970년 11월 화재로 홀라당 캐프파이어를 해 묵고 2007년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머리나쁜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이곳이 어디인지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비석...@@
보시다시피 사랑채는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가 ㄱ 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근데 사랑채가 머하는 곳이여??.
물통처럼 생겼는데...멀까요? 바로 물통입니다. 사람이 먹는 물을 담아 놓은 물통은 아니고 말들에게 먹을 물을 담아 놓았던 ...@@ 생긴게 좀 고풍스럽게 생겼네요... 떠있는 부레옥잠을 보고 꽃병인 줄 알았는데...@@
요건 또 뭐에 쓰는 물건인고??? 정답은 .. 정답은 ... 기억이 안나네...@@ 들었는데...가이드 하신 교수님에게..하여간 예전 집안에 큰 잔치나 행사가 있을때 바로 저 위에 큰 불을 피워 집안을 밝히던 용도로 쓰는 것이라 한다. 물론 그 용도로 만들어진건 아니고 아랫부분은 남산에 널린 석물(최소 천년은 넘은 것들...)을 위치이동한 것이고 윗 부분은 요세 따로 만들어 올려 놓은 것이라나...어쩐다나...@@
사랑채 뒷태의 모습이고 우측에 입구와 행랑채의 모습이 그리고 왠 남자 두 분이...가만히 보니 한 사람이 먼가를 들여다 보는 게 분명 절도범이 분명하고 그 옆엔 망보는 넘이 틀림없는데...
사랑채의 옆 모습
사랑채 뒤로 더 가자 꽤 연세 좀 드신 것처럼 보이는 석등하나가 원래 이곳에 있던 건 아니고 근처 남산에 뒹굴고 있던 신라시대나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예전 양반집에서 가끔 집단장용으로 남산에서 득템한 물건들을 자주 옮겨 왔다고 하는데...최씨네 집도 또한..또 최씨 집에 1700년대 조선 중기이전엔 남산 근처 내남에 살았으니 .. 지금도 내남에 가면 그 옛 본가가 남아있는데 그곳이 사람이 살고 있고 또 개방이 안돼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좀더 뒤로 가보니 잉????.용도를 알수 없는 작은 쪽문과 난방용 보일러 기름통???.. 아무리 부자집이라 해도 조선시대 뀌뚜라미 보일러가?... 사실 뒤쪽 안채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최씨 집안 사람은 아니고 이곳에 살며 관리도 하는 가족이 살고 있다고 하니...그집 보일러 기름통이...
관광객은 아닌거 같지만 왠지 학자풍의 할배가 한분 계셔서 슬쩍 말을 건네니 이곳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무료 문화재 설명을 해주시는 지금은 은퇴하신 崔 勇 夫 영남대학교 교수님이셨다. 아까 물론 이분은 꽁짜로 해주는 건 아니고 일정 교육을 수료하고 일주일에 몇일 나오셔서 가이드를 하신면 지자체에서 용돈을 20 여만원 정도 드린다고 한다.
이분에게 이것 경주최씨 집안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경주 최씨 집안은 예로부터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을 하지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마라. 며느리들은 시집 온 뒤 삼 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라는 6 개의 가훈으로 지역의 모범이 되어 오다가 작고하신 최 준씨대에 이르러 전 재산을 예전 대구대학교(지금의 대구 대학과는 무관)에 기부하였고 다시 대구대학교는 청구대학교와 합병해서 지금의 영남대학교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을 해 주셨다...(다 아는 야그지만 아는 야그라고 하면 우리 할배교수님 실망하실까봐..끝까지 경청을.ㅎㅎ)
2008년 초에 선배 가족과 워커를 가이드 하셨던 분의 야그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었는데. 그분도 예전 영남대학교 사학과에서 강의를 하셨던 분이다.
그분 말씀을 요약해 보면
가훈에 위에 6가지 내용이 있는 건 사실이나 어는 고문서에도 경주 최씨 집안이 행한 선행이 실린 경우는 없고 또 후대에 이르러서는 집안이 그리 흥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그리고 전 재산의 국가 헌납 문제는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고 최 준씨가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있어서 독립군 군자금을 맏아 보관해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누구 누구는 일본경찰에 걸려 돌아가셨는지 아님 만주 벌판에서 어떻게 되셨는지 .. 하여간 최준씨가 그 돈을 계속 보관하였는지 아님 꿀꺽 할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나중에 관련자가 나타나 최준씨를 나무랐는지 아님 같이 묵자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말 쌈(??)이 붙어서 최준씨가 재산을 국가에 아니지 헌납을 했다나 말았다나..뭐 대충 그런 야그였는데....
도대체가 누구의 말이 정답인지... 같은 학교 같은 과 교수분들도 의견이 재 각각인지...원..하여간 판단은 제 각각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최 용부 교수님께 좀 곤란한 문제들... 박근혜 씨와 영남대학과의 관계 등을 물어 보았는데.. 역시나 민감한 부분에는 말씀을 피하시는 모습이..
인자하신 교수님과 헤어져
이곳이 그 옛날 경주 최부자집의 상징 인 곳간 곳간 하나 약 천석이 들어간다고 하니 예전엔 이런 곳간이 10채가 있었다는 야그인데..지금은 이곳 관리인의 창고로 쓰인다나....@@
곳간의 정면 모습...워커집보다 클거같은 느낌이...아흑...ㅠ.ㅠ
곳간 앞에서 찍은 사진...
최씨 고택 대문을 들어서서 약간 오른 쪽으로 몇 걸음 움직여 정면을 바라보면 집구조가 두 군데로 나누어 지는데 중앙에 작은 사랑채 그리고 좌측에 큰 사랑채 우측은 안채로 바깥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에서 보면 작은 사랑채와 큰 사랑태가 합쳐저 ㄱ 자 형태의 모습을 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보면 고택 전채 모습은 ㅁ 자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 좌측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이는데 들어가보니 관리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고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최씨집안 사당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는데 관리인 남자가 " 너 누구야?? 하며 도리께를 들고 나올거 같기도 하고 사당에서 귀신 딱지 나올거 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사진이고 뭐건 다 집어 치우고 다시 마당으로 작전상 후퇴..... =3=3=3 @@
이제 다시 대문 쪽으로 .. 잉... 이곳이 행랑채라고 하는 곳인데 즉 행랑아범네 가족이 사는 곳이다. 행랑아범은 먼가하믄...긍께 좋은 야그로 하면 집사이고 대충 말하믄 하인들 가족이 사는 곳,...@@
보통 대문 옆에 있는데 구조상 대문 담벼락과 집안 벽을 일부 공유를 ....@@ 사진 상으로는 안보이지만 죄측으로 좀 가면 곳간이 있다.
행랑채 옆 모습...처마 밑에 달인 옥수수가....@@
마지막으로 나오기전에 ... 이곳이 바로 ㅋㅋㅋㅋ 칙간. 냄새.. 예전 어릴때 생각이 나는군요...밤에 재래식 화장실 갈때 그 공포... 빨간 전구가 달린 ... 일을 보다가 행여 밑에서 빨간 손이 올라와서 꼬추나 부랄을 따 갈까 벌벌 떨던 기억이...
경주 최씨 고택을 떠나기 아쉬워... 워커가 온 흔적을 화장실에 남기고 나이가 중년에 들어서니 오줌빨에 힘이 없어서 ... 지송....
이상으로 재미없는 신발장 (찢어진 워커가 사는 곳.. 경주) 구경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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